[팩트체크] 영화 뺨친 '기생충' 구글 대역전극…오스카 전날 5→1위로

입력 2020-02-18 09:20
수정 2020-02-18 09:48

영화 '기생충(Parasite)'이 오스카를 거머쥐었습니다.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며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에서도, 대한민국 영화사 101년 중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한 감독이 4개의 오스카를 석권한 건 1954년 월트 디즈니 이후 66년 만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한 작품으로 4관왕에 오른 사례는 봉준호 감독이 최초입니다. 디즈니는 각각 다른 작품으로 4개 상을 받았기 때문이죠.


기생충의 4관왕은 봉 감독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건입니다. 봉 감독은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조금 전 국제영화상을 받은 후 오늘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릴렉스(relax)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캠페인을 맡은 국내 배급사 CJ와 미국 배급사 네온(NEON)의 최초 목표도 '후보에 올리는 것'이었다고 알려졌죠. '4관왕'은 예상을 뛰어넘은 성과란 뜻입니다.


뉴스래빗 분석 결과, 제작진 뿐 아니라 대중도 '기생충'의 쾌거를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 구글 트렌드로 작품상 후보작 9편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에서 'parasite' 검색량은 2019년 12월까지만 해도 5위에 불과했습니다. 추가 데이터도 함께 확인해보니 제작비, 상영관 수 모두 열세에 있었죠. 경쟁작 중 전 세계 검색량 비중은 미국보다도 더 적었습니다.

'기생충'에 대한 관심은 시상식이 열리는 2020년 2월 들어 대반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기생충'은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깨부수고 아카데미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대반전을 일군 '기생충'의 여정, 뉴스래빗 [팩트알고]에서 데이터로 설명해드립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검색량은 대중의 관심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다. 뉴스래빗은 구글 트렌드에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9편의 검색량을 수집했다. 2019년 7월부터 2020년 2월 10일까지 총 8개월여를 시계열로 살펴본다.

구글 트렌드는 검색어 간 검색량 차이를 상대적으로 제공한다. 비교 대상 키워드 중 가장 검색량이 많았던 지점을 100으로 놓고, 나머지 키워드의 검색량을 0~99 사이 숫자로 환산하는 식이다.

전 세계 검색량과 더불어 미국 내 검색량도 살펴봤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원칙적으로 '미국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로스앤젤레스(LA) 지역 영화관에서 최소 7일 연속 상영한 영화에만 수상 자격을 준다.

영화별 검색량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기 위해 각 후보작의 제작비, 영화관 수, 매출, 언어 등 관련 데이터도 수집했다. 영화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Box Office Mojo by IMDbPro'를 활용했다.
미국 대중, '기생충' 이미 열광?
오스카 전날 구글트렌드 '1위' 역전미국에서 '기생충(검색어 'parasite')'에 대한 관심은 저조했습니다. 2019년 10월까지만 해도 검색량이 9개 후보작 중 5번째였죠.

시상식 직전까지도 기생충은 미국 구글에서 최고의 관심을 받진 못했습니다. 검색량이 몇 개월에 걸쳐 점점 올라가긴 했지만, 미국 대중의 기대감이 기생충을 향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12월까지 기생충의 구글 검색량은 대체로 한 자리 수였습니다.

2019년 10월만 해도 '기생충'의 월 평균 검색량은 2.0에 불과했습니다. 1위 '조커(38.0)' 대비 19분의 1 수준이었죠. 2019년 11~12월에도 경쟁작이 나타날 때마다 한 단계씩 순위에서 밀렸습니다. 11월에는 '아이리시맨'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3위로, 12월에는 '작은 아씨들'과 '1917'이 개봉해 5위까지 내려갔습니다. '기생충'의 월 평균 검색량은 2019년 11월 9.0, 12월 8.0으로 내내 한 자리 수를 넘지 않았습니다.

검색어 'parasite'가 경쟁작 대비 상승세를 탄 건 2020년 1월부터입니다. 오스카 후보에 오르면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2019년 12월까지 5위였던 기생충은 1월 5일 미국에서 '아이리시맨'을 제치고 4위에 올랐습니다.

2020년 1월 20일엔 작은 아씨들, 조커까지 제치고 후보작 중 검색량 2위에 오릅니다. 이후 1월 말까지는 조커에 이어 3위를 유지했습니다. 이 때까지 검색량 1위는 계속 '1917'이었죠. 뉴스래빗 홈페이지에서 월별 자세한 수치 확인검색량이 계속 많아지긴 했지만, 2020년 2월 들어서까지도 기생충은 3위에 머물렀습니다. 2월 6일까지 계속 3.0으로 2위인 '1917'을 뒤좇다 2월 7일에야 2위에 올라섭니다. 미국에서의 관심은 수상 직전까지도 기생충에 있지 않았단 뜻입니다.

시상식 전날인 2020년 2월 9일 12.0으로 '1917'을 근소하게 앞서며 처음으로 1위를 기록하며 대역전했습니다. 시상식 당일인 2020년 2월 10일은 뉴스래빗이 분석한 검색량 데이터 전체 중 가장 많아 100.0으로 측정됐습니다. 검색량이 16.0이던 조커보다 6배 이상 많은 양입니다. 구글 트렌드 계산법에 의하면, 후보작 중 검색량이 가장 많은 2020년 2월 10일 'parasite' 검색어를 100으로 놓았을 때 다른 후보작 키워드를 압도했단 의미입니다.

경쟁작 대비 제작비와 상영관 규모는?
8위, 6위…관심·투자·인종 모두 열악했다구글 트렌드를 통해 보니 대중은 시상식 직전까지도 '기생충'의 4관왕 석권을 기대하지 않았던 듯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생충은 미국 내에서 경쟁작들에 비해 여러 모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수상 후보작 9편을 비교해볼까요. 기생충의 제작비는 1200만 달러로 작품상 후보 9개 중 8위입니다. 이는 1위인 아이리시맨(1억5900만 달러)에 비해 무려 13배나 낮습니다.

2위 1917(1억 달러)과 3위 포드 V 페라리(9760만 달러)와는 약 8배, 4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9000만 달러)와는 약 7배 이상 차이 납니다.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은 아이리시맨과 결혼이야기를 제외한 7개작 중 기생충의 상영관 수는 6위(2001개)입니다. 미국 내 상영관 수가 가장 많았던 조커(4374개)의 45% 수준에 불과했죠.

2위 1917(3987개), 3위 포드 V 페라리(3746개), 4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3659개), 5위 작은아씨들(3308개) 보다 1000~2000개 가량 적습니다. 상영관 수가 적었던 만큼 매출도 적었습니다. 기생충의 미국 매출은 3561만 달러로 후보작 중 6위입니다. 1위 조커(3억3520만 달러)보다 9배, 2~5위 작품들과는 약 3배 가량 적습니다.

미국 내 대중의 관심도, 투자와 성과마저도 부족했던 기생충이기에 아카데미 4관왕이 더 놀라운 '반전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기생충 검색' 더 뜨거웠을까?
'기생충' 전날까지 3위…미국보다 무관심기생충의 활약을 예측할 수 없었던 건 미국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검색어 트렌드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혀볼까요.

2019년 12월 1일에만 해도 검색어 'parasite'는 검색량 11.0으로 경쟁작 중 '아이리시맨'(100.0), '조커'(57.0)에 이어 전 세계 3위였습니다. 그러다 2019년 12월 25일 '1917'과 '작은 아씨들'이 나오며 검색량 비중이 떨어지기 시작했죠. 결국 조커가 1위, 작은 아씨들 2위, 아이리시맨 3위, 1917이 4위, 기생충은 5위로 2019년 12월을 마감합니다.

'기생충' 전 세계 검색량 상승은 미국보다 더뎠습니다. 미국 내에서 시상식 전날부터 '1917'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과 달리, 전 세계 검색량은 2020년 2월 9일까지 3위였죠. 시상식 당일인 2020년 2월 10일이 되어서야 경쟁작 '조커'(24.0)보다 4배 많은 검색량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습니다. 이 날 'parasite'의 검색량이 수집한 데이터 중 가장 많아, 100.0으로 설정됐죠.

대중의 관심을 전 세계로 넓혀서 보면, '기생충'의 수상은 더욱 놀라운 결과인 셈입니다.
후보작 전부 영어, 감독 전원 백인
"미국을 파괴한다" 차별 직면하기도기생충이 직면했던 불가능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봉준호와 기생충을 제외하면 여전히 새하앴습니다. 언어, 인종 등 여러 방면에서 역사적인 도전이었던 만큼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죠.

후보작 9편 중 기생충을 제외한 8편은 모두 영어로 제작됐습니다. 감독도 미국 출신 6명, 영국 출신 1명, 뉴질랜드 출신 1명으로 모두 백인이었죠.

이러한 환경에서 아시아 최초 각본상과 비영어권 최초 작품상을 수상해서였는지, 기생충은 수상 당일까지도 차별과 싸워야 했습니다.

익명의 아카데미 회원은 2020년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연예 잡지 '더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외국 영화가 '일반 영화(regular films)'와 함께 작품상 후보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미국 방송인 존 밀러는 봉 감독이 각본상을 수상한 데 대해 "이런 사람들이 미국을 파괴한다"고 말하며 논란을 키우기도 했죠.열악한 조건 속 4관왕 '기생충'
불가능한 꿈을 실현했다아카데미 시상식은 봉준호 감독의 말마따나 미국의 '로컬(local·지역) 영화제'입니다. 일정 기간 LA 지역 영화관에 걸려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수상한 '국제영화상'이라는 상이 별도로 존재하는 점도 이를 방증합니다.

하지만 규모와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백인 감독이나 영어로 된 작품에게 오스카가 주로 돌아갈 때마다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백인 중심의 미국 시상식에서 한국인이 하룻밤에 가장 많은 트로피를 가져간 것은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글 트렌드를 분석해보니 미국인들이 '기생충'에 가지는 관심은 매우 낮았습니다. 거대한 미국 영화 산업에서 경쟁작 대비 제작비, 성과 등 제반 조건 또한 열세였죠. '기생충'의 활약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냈기 때문에 '기생충'의 활약이 더 대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경 CJ 부회장은 작품상 수상 소감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의 실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다사다난했던 한국 영화의 오스카 수상 여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보여줬던 가능성처럼, 어떤 조건 속에서도 더 많은 한국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길 뉴스래빗이 희망해봅니다 !.!



책임= 김민성, 연구= 강종구,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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