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는 역사다. 각각의 노래는 탄생시점을 현재로 하는 막사발이고, 세월의 강물에 흘러가는 돛단배다. 유행가 한 곡엔 작사가, 작곡가, 가수 외에도 시대상황, 사람들의 삶, 역사적 사건, 지명 등 요소들이 빼곡하다. 역사의 궤적과 마디마디의 살피를 음유할 수 있다. 한국 대중가요 100년사는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이고, ‘가삼백만인우(歌三百萬人友: 노래 300곡을 음유하면 1000만인의 벗이 될 수 있다는 뜻)’다. 우리들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삶이고 인생이었던 유행가를 따라가본다.
‘동백아가씨’는 우리나라 유행가 역사상 최초로 음반 100만 장 판매 기록을 썼다. 입으로 읊조리면 그 감흥이 가슴으로 녹아 흘러내린다. 서양 노래는 오선지 위에 선율이 올라앉은 격이고, 우리 유행가는 선율 위에 민초들의 삶을 펼쳐놓은 것과 같다. 이 곡은 프랑스 실화소설이 노래로 화(化)한 것, 그 노래가 다시 영화로 탄생한 대표적인 곡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1절)
1절 뒤 이어지는 낭랑한 중간대사는 선율과 노랫말을 감칠맛 나게 이어준다. ‘물새 날고 파도치는 아주까리 섬/ 빨간 열매 정을 맺는 아가씨 귀밑머리/ 뱃사공아 노를 저어 떠나면 언제 오나/ 심술치마에 담은 이 동백꽃 누구를 주랴.’ 이어지는 2절에선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이 눈에 아른거린다.
노래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다. 1850년을 전후해 파리 5대 극장가 특별석에 밤마다 나타나는 여인이 있었다. 한 달 중 25일은 흰 동백꽃, 5일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꽂았다. 고급 창녀, 마리 뒤플레시스였다. 그를 사랑한 사람은 소설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뒤마 페르의 아들 뒤마 피스(1824~1895). 그가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안타깝게도 마리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뒤마 피스는 울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 3주 만에 소설 《춘희(椿姬)》를 완성했다.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이 소설을 오페라로 만들어 1854년 공연했다.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 타락한 여인)’다. 극중 주인공 비올레타가 들고 나오는 흰 꽃과 붉은 꽃이 동백이다. 동백(冬柏) 꽃말은 ‘그대를 사랑한다, 맹세를 지킨다’이다. 그래서 결혼식에서 약속의 상징으로 쓰기도 한다.
노래를 부른 이미자는 우리 유행가 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통속적인 노랫말로 대중과 소통했고, 2009년 자신의 노래인생 50년을 담은 그림에세이 《동백아가씨》를 발간했다. 작년 가수 60년 기념공연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로 대중과 만났다. 이미자의 폐활량은 일반인의 2.5배다. 그는 말하듯 노래하는 성대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이 노래는 1964년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곡이다. 김기 감독이 연출하고 신성일, 엄앵란이 열연했다. 이미자가 노래를 불러 ‘대박’이 터졌고, 이미자를 ‘엘레지의 여왕’으로 만들어줬다.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구절이 빨갱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됐다가 1987년 해금됐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와 일본, 중국에 자생하는 상록교목이다. 10월 초부터 4월까지 꽃을 피운다. 동백씨앗은 기름을 짜서 여인네들의 머릿기름으로도 사용했다. 1960년대 ‘동동구리무’를 팔던 보부상들의 필수 품목이었다.
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이사·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