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국회의원 총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으나 정치판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파 간 이합집산이 계속되는 가운데 공당(公黨)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힐 당명조차 정하지 못하는가 하면, 선거구 획정도 미루기만 하니 여야 공히 직무유기다. 포퓰리즘이 판치는 선거로 ‘정치 냉소주의’와 ‘투표 해악론’을 부채질하면서 나라를 발전시키기는커녕 퇴행시킬까 겁난다.
선거에 나설 팀과 등판 선수도 정해지지 않은 채 ‘선심성 복지’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1호 공약이 기껏 ‘공짜 와이파이 전국 확대’다. “빚내서라도 나랏돈을 주겠다”는 ‘매표 공약’은 더 나올 것이다. 이런 와중에 자유한국당이 감세 공약을 내놔 주목된다. 법인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인하, 가업승계 기업 세부담 경감, 혼인·이사비용 세액공제 등 내용이 구체적이다. ‘감세 세트’라고 할 정도로 경제 여러 부문에 걸쳐 기업 지원과 소비 회복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쟁점이 분명하고 구체성이 있는 이런 정책공약이 더 나와야 한다. 엄중한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감세 경쟁이 상식적이지만, 설사 증세 공약이어도 논리적 타당성을 갖췄다면 유권자 심판을 받아볼 만할 것이다. 급증하는 복지수요 같은 문제를 정면 돌파해보겠다면 세원 확대, 보편 과세 등을 전제로 좌파 진영에서는 증세로 승부를 걸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게 책임 있는 공당이다. 정책선거의 역사가 오랜 유럽의 좌파 정당 가운데는 증세를 내세운 곳이 적지 않다. 요컨대 주요 사안은 어물쩍 피하지 말고 구체적 정책안으로 유권자 선택을 받으라는 것이다.
먼저 ‘선거체제’에 돌입한 여당의 공약들만 봐도 기껏 ‘동네 개발’ 수준이 태반이다. 국회 소임에 맞게 국가운영 공약을 내놔야 한다. 국가 유지의 대전제인 세제는 물론, 외교·안보도 엄중한 시기다. 북한핵 문제를 언제까지,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지도 필요하고, 미국 중국 일본 등과의 관계 설정도 분명히 해야 할 때다. 우리나라가 한·미동맹을 강화해 나갈지, 친중·반일(親中反日)로 갈지 유권자들은 궁금해한다. 탈원전, 평준화와 수월성 교육, 형사사법체계 등 국가운영 시스템과 관련해 공당이 입장을 밝혀야 할 국가 아젠다는 많다. 임금과 고용, 기업정책 등 경제 문제가 앞에 내세워져야 할 상황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당도 감세가 왜 필요하며 어떤 효과를 낼지 유권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끔 설명해나가야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내실 있는 경제 성장을 도모하면서 국가 안위와 미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공당의 책무다. 외부인사 영입경쟁도 그런 기반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념과 지향점을 정립하고 그에 맞게 역량과 자질을 갖춘 인력을 보강하는 것은 정책공약 수립만큼 중요하다. 철학과 가치를 ‘세일즈’하고 선거를 통해 정책을 선택받는 게 현대 정치다. ‘채소가게’인지 ‘정육점’인지도 모를 모호한 점포를 내놓고 손님(유권자)을 받겠다면 ‘정치야바위꾼’과 다를 게 없다. 정책이라는 상품이 수준 높고 부실 논란도 없을 때 정치가 성숙하고 나라도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