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3000만원을 주겠다.”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가 2007년 대선 때 내놓은 황당한 공약이다. 13년이 흐른 뒤 이 공약이 지방자치단체들의 출산장려금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전남 영광군이 올해부터 셋째 아이를 낳으면 3000만원을 주기로 조례를 바꾼 것이다. 인구 감소에 직면한 지자체들이 수년간 출산장려금 경쟁에 나서면서 관련 예산은 급증하는 추세다. 하지만 출산 증대 효과가 거의 없어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효과 없는데도 ‘퍼주기 경쟁’
1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 아동수당과 별개로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지자체는 전체의 92%에 이른다. 예산은 3478억원으로 저출산과 관련한 지자체 예산의 39%를 차지한다. 인구가 줄고 있는 농촌지역은 물론 서울 강남구를 비롯한 수도권 등 66개 기초지자체가 출산장려금을 지급한다.
출산장려금은 해가 갈수록 오르고 있다. 인근 지자체가 장려금을 인상하면 기존 인구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같이 올려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010년만 해도 전남 함평군이 700만원(셋째 아이 기준)으로 가장 높았지만, 2015년 경남 창녕군이 1000만원까지 올렸다. 지난해에는 경북 울릉군이 2600만원, 전남 진도군이 2000만원을 지급하며 2000만원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출산장려금을 인상하고도 신생아 수가 감소하는 지자체가 대부분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장려금을 주는 곳과 안 주는 곳의 출산 증가 인원 차이가 미미하다면 안 주는 게 맞다”며 “인구 증대 핵심인 가임기 여성 증가와 상관없이 돈 쓰기가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 지자체들이 앞다퉈 올리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먹튀’ 양산하는 출산장려금
전남 해남에서는 지난 8년간 5741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이 기간 태어난 0~7세 연령 인구 중 지금도 해남에서 거주하는 아이는 3472명에 불과하다. 해남에서 출산장려금을 받은 부모의 40%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살지 않으면서 주민등록지만 변경하거나 잠깐 거주하면서 장려금만 타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2017년 충북 영동에서는 출산장려금을 받은 산모의 37%가 주민등록 1년 이하의 신규 전입자였다. 전라남도의회 조사에 따르면 2017년까지 5년간 장려금만 받고 떠난 산모가 전남 도내에서만 1584명에 달했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은 출산장려금 인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경북 북부 지역이 대표적이다. 영덕군은 첫째 아이에게 30만원 지급하던 출산장려금을 2017년부터 480만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다른 지자체들이 경쟁에 가세했다. 2018년 의성군이 390만원, 영양군이 360만원으로 인상했다. 그러자 영덕군은 한 발 더 나아가 출산장려금을 530만원까지 올렸다. 봉화군은 뒤늦게 판을 키웠다. 지난해부터 첫째 아이 기준 전국 최고금액인 7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출산장려금 효과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반짝’ 증가했던 해남의 출생아 수는 2015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출생아는 468명으로 2015년(839명) 대비 56% 수준으로 줄었다.
“돈 풀어 표 얻는 정책”
출산장려금 시행 과정에서 먹튀와 실효성 논란 등이 불거지자 지자체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시불로 주던 출산장려금을 일정 기간에 걸쳐 나눠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2~3년간 매월 일정 금액을 입금하는 식이다. 봉화군처럼 5년에 걸쳐 지급하는 사례도 있다. 장려금만 받고 주소를 옮기는 문제를 조금이나마 줄여보기 위해서다.
제도 자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폐지하는 지자체도 있다. 강원 속초시는 2006년부터 지급해오던 출산장려금을 2015년 폐지했다. 장려금 지급에도 출생아 수가 꾸준히 줄어 출산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속초시와 비슷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을 경험한 국가 중 현금을 줘서 출산율을 높인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노경목/박진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