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문 "삼성폰, 애플과 다른 길 간다"

입력 2020-02-12 17:32
수정 2020-02-13 01:26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사진)은 11일(현지시간) “(삼성이 잘할 수 없는) 서비스와 콘텐츠는 글로벌 톱플레이어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스마트폰 제품을 혁신하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 ‘화력’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노 사장은 이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 행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삼성전자 모바일사업 전략의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스마트폰 사업을 이끄는 무선사업부장에 오른 뒤 처음 연 기자간담회다.


삼성전자는 과거 운영체제(OS·타이젠), 음악(삼성 뮤직), 채팅(챗온)과 같은 서비스·콘텐츠 사업에 발을 담갔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지금도 클라우드, 인공지능(AI)과 같은 플랫폼 서비스에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최근 애플은 스마트폰(아이폰)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동영상, 금융 등 콘텐츠·서비스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전략이다.

노 사장은 “수년간 많은 토론과 시행착오를 거쳐 내린 결론은 우리(삼성전자)가 원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걸 제대로 하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의 ‘삼성페이’처럼 강점을 지닌 서비스는 더 발전시키겠다”고 덧붙였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삼성 "스마트폰 자체 혁신에 집중…콘텐츠는 전략적 제휴로 보완"
노태문 사장 첫 기자간담회…'전략 변화' 나서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11일(현지시간) 그동안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의 ‘난제(難題)’로 여겨졌던 서비스와 콘텐츠, 소프트웨어 사업에 비교적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삼성이 잘하기 쉽지 않은 이런 분야들은 독자 사업을 과감하게 접고,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노 사장은 대신 “제품을 혁신하고 완벽한 사용자 경험을 고객에게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방향을 바꾼 것이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의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강조했다.

‘갤럭시S’ ‘갤럭시노트’ 등 삼성 모바일 히트상품 개발의 주역인 노 사장은 예전부터 이런 경영 전략을 일관되게 견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무선사업부 내 노 사장의 역할과 비중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의 방향키도 서서히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품경쟁력에 집중

노 사장이 무선사업부장에 취임한 뒤 기자간담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향후 폴더블(접는)폰 출시 및 판매 전략, 무선사업부 수익성 제고 방안,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공략 계획 등 다양한 질문에 다소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애플의 생태계 강화 전략에 관한 질문엔 반응이 달랐다.

그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라고 운을 뗀 뒤 “가감 없이 말하자면 세계 유수의 서비스, 콘텐츠 기업들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고객에게 원하는 걸 전달한다는 방향을 세웠다”고 말했다. “우리(삼성)가 원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결정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수년 동안 많은 토론과 시행착오를 거쳐 내린 결론”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의 가장 중요한 변화”라며 다소 강한 수식어를 썼다.

삼성의 이런 전략에 이목이 쏠리는 것은 최근 모바일 관련 서비스와 콘텐츠가 단말기 사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지난해부터 기존 단말기 사업에서 동영상, 게임, 금융 등 서비스와 콘텐츠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것도 주력 사업인 아이폰을 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아이폰 사용자를 삼성전자와 같은 안드로이드 계열로 뺏기지 않게 가둬놓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삼성도 과거 운영체제(OS·타이젠), 음악 서비스(삼성 뮤직), 채팅(챗온) 같은 서비스와 콘텐츠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특히 클라우드나 인공지능(AI)과 같은 ‘플랫폼’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다. ‘빅스비’로 대변되는 음성 AI 플랫폼은 삼성전자가 전사적으로 밀고 있는 사업이다. 이에 대해 노 사장은 “‘삼성 페이’처럼 삼성이 강점을 지닌 사업은 더욱 심화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제휴를 통해 삼성의 모바일 생태계를 확장하겠다는 전략은 이날 갤럭시S20 시리즈와 갤럭시Z플립 발표회에서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화상채팅(구글 듀오), 게임(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동영상(넷플릭스), 음악(스포티파이) 등 삼성의 모바일 사업과 연계를 맺고 있는 여러 기업 핵심 경영진이 무대에 올라 삼성과의 협업을 약속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선 “독자적으로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 사업을 확대하는 애플에 대항해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전선을 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프트웨어 혁신이 제품경쟁력

노 사장은 ‘하드웨어 혁신’에만 치중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제품의 혁신성과 완벽에 가까운 사용자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혁신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디스플레이 성능이 하드웨어뿐 아니라 AI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에 좌우된다는 의미다. 삼성전자가 이날 발표한 갤럭시S20 시리즈가 노 사장의 전략을 잘 보여주는 제품이다. 노 사장은 “촬영 환경을 감지해 빛의 양을 조절하고 100배 줌(확대)을 할 수 있는 기술은 AI 소프트웨어 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노 사장은 스마트폰 시장 포화, 신흥시장 공략 부진으로 영업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다. 실제 무선사업부가 속한 삼성전자 IM(IT·모바일)부문의 작년 영업이익은 9조2700억원으로, 2011년 후 8년 만에 10조원 밑으로 하락했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선 여전히 1% 수준의 점유율로 고전하고 있다.

그는 “피처폰 시절에도 후발주자로서 고전했고, 스마트폰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도 결코 쉽지 않았다”며 “지금이 위기인 건 사실이지만 이는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재도약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실적에 대해선 “내부적으로는 적어도 작년보다 나아진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노 사장은 5세대(5G) 이동통신과 폴더블폰이 삼성에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과거 정체됐던 피처폰 중심의 휴대폰 시장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확 커진 전례를 언급하며 “폴더블폰, 5G 통신, AI,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기술 혁신이 스마트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폴더블폰에 대해선 “이제 태동기”라며 “하반기부터 대중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좌동욱 특파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