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피치가 한국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해 “중기적으로 국가 신용등급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국의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새로운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피치는 12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한다”며 이 같은 내용의 한국 정부 및 시장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피치는 한국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AA-는 네 번째로 높은 투자 등급으로, 대만 벨기에 카타르와 같은 수준이다.
피치는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는 각각 1.5%, 3.5% 적자가 예상된다”며 “정부 계획대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지난해 38%에서 2023년 46%로 높아지면 국가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나랏돈을 대거 푸는 내용의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지난해 공개했다. 국가채무가 지난해 740조원에서 2023년 1061조원으로 껑충 뛰면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7.1%에서 46.4%로 높아진다는 내용이었다. 피치는 그러나 “한국 정부가 건전하게 재정을 관리해온 경험과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40% 중반으로 관리하려는 의지는 재정 위험을 덜어주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단기 재정확대 정책에 대해서도 “한국은 그럴 만한 재정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피치는 “올해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예상치(40.7%)는 AA등급 국가들의 중간값(39.5%)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피치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제시했다. 작년 8월 내놓은 전망치를 유지한 것이다. 피치는 “재정 확대, 반도체 가격 회복, 무역정책 불확실성 완화 등으로 한국 경제가 회복할 것”이라며 “작년 4분기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정부 지출이 주요 성장동인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성장을 가로막을 위험 요인으로는 코로나19를 꼽았다. 관광업과 소매판매가 타격을 받고 있는 데다 각종 부품 공급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어서다. 미·중 1차 무역합의로 중국이 미국 제품을 대거 구매키로 함에 따라 한국의 수출물량이 일부 줄어들 가능성도 언급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봤다.
피치는 올해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 등을 위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0.5%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피치는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가 경제에 미칠 영향도 보고서에 담았다. 피치는 “여당이 승리하면 현재 정책 방향이 유지되겠지만 야당이 승리하면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소득주도성장 전략과 대북 협상 노력에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