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류시장은 약 5조3000억원 규모다. 맥주가 이 시장의 42%, 소주는 32%를 차지한다. 10여 년간 잠잠하던 주류 시장에 지난해 큰 지각 변동이 일었다. 맥주시장에선 9년째 2위에 머물던 회사가 1위를 바짝 추격하며 올해 대역전을 준비하고 있다. 소주업계에서는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오랜 양강 구도가 깨졌다.
맥주와 소주업계를 한꺼번에 뒤흔든 주인공은 하이트진로다. 96년 역사의 국내 최대 종합주류기업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맥주 ‘테라’와 원조 두꺼비 소주를 재해석한 ‘진로이즈백’ 등 신제품이 잇따라 히트하면서 7년 만에 매출 2조원을 회복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로 올해 국내 맥주시장에서 1위를 탈환하고, 참이슬과 진로 소주를 세계 시장에 더 널리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등 맥주와 1등 소주의 만남
하이트진로는 2011년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해 출범했다. 당시 가장 오래된 맥주 회사와 가장 오래된 소주 회사의 ‘역사적 결합’으로 큰 화제가 됐다.
하이트맥주는 1933년 경기 시흥 영등포읍에서 조선맥주주식회사로 출발했다. 1945년 해방과 1950년 6·25전쟁 등을 거치며 조선맥주는 금관맥주, 크라운맥주 등의 브랜드를 출시했다. 진로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 있던 진천양조상회가 모태다. 1954년 서울 신길동의 서광주조가 소주의 대명사인 두꺼비 상표로 ‘진로’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진로는 생산지인 진지(眞池)의 ‘진(眞)’과 소주를 증류할 때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힌다는 뜻의 ‘로(露)’를 합친 이름이다.
하이트진로그룹은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부친인 고(故) 박경복 회장이 1967년 조선맥주의 경영권을 인수하며 도약의 틀을 마련했다. 조선맥주의 대표 브랜드였던 크라운맥주는 1968년 국제식품심사위원회에서 최우수상(금상)을 받기도 했다. 1971년 영등포공장 설비를 두 배로 늘리고, 1973년 기업공개를 하는 등 공격 경영에 나섰다. 이후 마산공장, 전주공장, 강원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새로 건립해 세 개의 맥주 공장을 운영했다. 조선맥주는 1998년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바꾼 뒤 2005년 법정관리 중이던 진로를 인수했다. 이후 2011년 하이트맥주와 진로를 합병해 국내 최대 주류 전문 그룹인 하이트진로가 출범했다.
○대한민국 주류 100년 역사를 품다
역사가 긴 만큼 하이트진로는 대한민국 주류 문화와 주조 기술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93년 출시된 하이트는 암반 천연수로 만든 맥주로 출시 3년 만에 1위에 올랐고, 이후 18년간 왕좌를 지킨 브랜드다. 국내 최초 비열처리 맥주, 온도계 마크와 신선도 유지시스템, 음용 권장기간 표시제 등으로 주류 시장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하이트진로는 콜드존 여과공법, 산소차단 시스템 등 새로운 공법을 지속적으로 도입해 품질을 계속 업그레이드했다. 흑맥주 스타우트(1991년), 100% 보리맥주 맥스(2006년), 식이섬유함유 맥주 에스(2007년), 드라이 타입 맥주 드라이d(2010년), 프리미엄 에일맥주 퀸즈에일(2013년) 등도 끝없는 실험 속에 탄생한 제품이다.
맥주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테라’는 제품 구상에 5년, 개발에 2년이 걸렸다. 호주 청정 지역의 맥아를 엄선하고 발효 공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탄산만을 사용했다. 테라는 출시 39일 만에 판매량 100만 상자를 돌파하며 국내 맥주 브랜드 중 출시 초기 가장 빠른 판매 속도를 기록했다. 101일 만에 1억 병을 돌파했고, 지난달 기준 누적 판매량 5억 병을 돌파했다.
국내 최초로 발포주 시장을 연 기업도 하이트진로다. 2017년 출시한 ‘필라이트’는 일명 ‘코끼리맥주’라고 불리며 발포주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발포주는 맥주보다 맥아의 함량은 낮지만 맛과 알코올 도수는 같게 만든 술이다. 세금이 낮아 기존 맥주보다 약 40% 싸게 출고되고 있다. 오리지널 제품 외에 후속작으로 ‘필라이트 후레쉬’ ‘필라이트 바이젠’ 등을 내놓으며 대학생 등 20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출시 2년6개월 만에 7억 캔 이상 팔려나갔다.
○세계로 가는 참이슬·고급화 시동 건 일품진로
소주의 원조 진로는 서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장수 제품이다. 창업 초기 진로 상표엔 서북지방 복을 상징하던 원숭이가 쓰였는데, 전국 영업을 시작한 이후 두꺼비로 바뀌었다. 한때 부산에선 ‘금련’이나 ‘낙동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기도 했다.
진로는 1970년 이후 50년째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1998년에는 국내 소주 역사상 최고 브랜드로 자리 잡은 참이슬을 내놓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출시 2년 만에 전국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참이슬은 알코올 도수 25도의 공식을 깨고 소주시장의 도수 낮추기 경쟁을 주도했다. 이를 통해 독한 술이라는 소주의 이미지를 부드럽고 깨끗한 술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특히 대나무숯 여과공법 등 신공법을 적용했고, 2006년 2월에는 20.1도의 참이슬 클래식과 18.5도의 참이슬 후레쉬 등을 선보여 소주시장의 변화를 이끌었다. 현재 참이슬 후레쉬는 17도다.
참이슬은 작년 말까지 21년간 누적 판매량 325억 병을 기록했다. 월평균 1억3000만 병 넘게 팔린다. 하이트진로가 소주의 원조라는 자부심은 지난해 4월 출시된 ‘진로이즈백’에서도 확인됐다. 1970년대 디자인을 복원해 재해석한 ‘뉴트로 진로’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출시 두 달 만에 연간 목표치였던 1000만 병이 판매됐고, 7개월 만에 1억 병이 팔려나갔다.
○‘소주 한류’ 이끄는 참이슬
소주 부문에서의 과제는 세계화와 고급화다. 하이트진로는 2018년 프리미엄 증류주 시장에서 ‘일품진로 1924’로 품귀현상을 빚는 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일품진로 18년산과 일품진로 19년산 등 슈퍼 프리미엄 소주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준비를 마쳤다”며 “하이트진로의 양조기술을 바탕으로 고급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에서 소주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이트진로는 80여 개국에 참이슬, 하이트, 맥스, 자몽에이슬 등을 수출하고 있다. 이 중 소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 잡으며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8년 소주 수출 규모는 5384만달러로 전년 대비 12.5% 성장했다. 주류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일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