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필록세라 이긴 호주 와인…최악 산불에도 건재"

입력 2020-02-12 08:32
수정 2020-02-12 09:25
"'헌터벨리 세미용'이 최고의 화이트와인으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랜트 밸브 티렐 수출이사는 지난 4일 서울 청담동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티렐은 호주의 대표 화이트와인으로, 우리나라에 지난해 6월 소개되면서 올해 1주년을 맞게 됐다.

밸브 이사는 "지난해 티렐 와인은 주요한 호텔에서 판매되고 있고, 롯데백화점 최우수(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테이스팅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올해 한국 판매 성과는 더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티렐 와인은 1858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헌터 밸리(Hunter Valley)에서 시작한 가족경영 와이너리다. '세미용'을 비롯해 '쉬라즈'와 '피노 누아' 등 품종을 키우고, 양조하고 있다.

세미용 빈야드의 포도들을 선별해서 만든 '티렐 vat1 헌터 세미용'은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100점을 받았다. 과실의 풍미와 부드러운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가벼운 미디엄 바디의 세미용 화이트 와인으로 말이다.

◆ 최악 호주 산불 '스모크 텐트'…수확량 ↓

티렐을 포함한 호주 와인은 다양성을 갖췄다는 게 특징이다. 밸브 이사는 "호주 와인은 칠레 와인 대비 다양성이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오스트레일리아는 남쪽과 북쪽이 4000km 정도로 넓어서, 같은 쉬라즈나 샤르도네라도 남쪽과 북쪽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호주 와인 업계에도 고민거리가 생겼다. 지난해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 때문이다. 산불에 따른 연기(스모크 텐트)가 형성되면서 수확량이 감소했다.

그는 "스모크 텐트 영향이 2~3개월 머무르면서 일조량이 적어져 땅에 수분이 부족하게 됐다"며 "좋은 와이너리는 개간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올해 헌터밸리 수확량도 18% 정도 줄었지만, 빅토리아 지역 와이너리는 영향을 받지 않아 완벽한 와인 제조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티렐 와이너리도 직접 영향권에선 피했다. 밸브 이사는 "호주의 면적이 유럽 전체 사이즈와 비슷하기 때문에, 산불은 전체 호주 빈야드의 1% 정도만 영향을 줬다"며 "헌터밸리는 시드니에서 차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어 산불에 영향을 직접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필록세라 이겨낸 호주 와인, 산불에도 건재

호주 와인 업계는 포도 품질을 이전처럼 유지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는 "스모크 텐트 때문에 4~5시간에 한 번 베리 냄새를 맡아 어떤 영향을 주는 지 면밀하게 조사해 호주 와인협회에 보고하고 있으며, 부정적인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호주의 포도나무가 과거 진딧물의 일종인 필록세라에도 굳건했던 만큼, 이번 최악의 산불 사태에도 건재할 것이란 확신이었다. 티렐 와이너리에 있는 포도나무는 유럽에서 들여온 품종이다. 현재 티렐 헌터밸리엔 올해로 153년 된 포도나무가 있을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과거 1860년대 유럽의 주요 포도밭은 진딧물의 일종인 필록세라로 황폐해지면서, 다시 호주에서 포도가지를 프랑스로 보내기도 했다.

그는 "당시 호주에서도 필록세라 감염이 발견됐지만, 전역으로 퍼지지 않았다"며 "프랑스에 다시 포도가지를 보낼 정도로 호주의 와인이 오리지널리티가 더 높다"고 밝혔다. 이어 "쉽게 말하면 우리가 입양을 보낸 애가 원래 본토 애보다 영어를 더 잘했던 셈"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헌터밸리가 위치한 북부의 호주는 더운 기후를 보인다. 밸브 이사는 "일조량이 좋아 수확기간이 30일 정도 짧다는 게 특징"이라며 "그렇지만 산도나 풍미가 좋고, 알코올 함량은 낮다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남부에서 나온 호주 와인은 더 풍미가 진하다는 게 특징이다. 그는 "남부 호주의 와인들은 더 풍부하고 풀 바디를 보인다"며 "오크 숙성이 자 돼 있고, 북부보다는 시원한 기후로 수확 기간이 길어 알코올 함량이 높다"고 밝혔다.

이처럼 티렐의 테루아(Terroir)는 남부와 북부의 특성을 모두 갖춰 유럽보다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밸브 이사는 "요즘엔 복합미를 앞세우고 과실의 풍미를 자랑하는 유럽스타일의 북부 호주 와인이 각광을 받고 있다"며 "티렐 와인은 호주 와인 생산량의 0.3%에 불과하지만, 프리미엄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 세미용은 복합미…샤르도네는 한식 궁합

세미용으로 만드는 티렐 세미용 라인은 프리미엄과 스탠다드 라인으로 나뉜다. 스탠다드 라인은 과실 풍미가 강한 캐주얼한 세미용이다.

밸브 이사는 "VAT1은 헌터벨리 세미용이 가장 유명한데, 처음 수입한 빈티지는 2014년 빈티지로 오크 숙성을 하지 않았음에도 다양하고 복합미를 갖춘 게 특징"이라며 "초기에 마셨을 땐 회 등 해산물과 잘 어울리고, 와인의 숙성도(Aging potential)가 20~30년 되면 치킨이나 육류와 같은 무거운 음식과도 잘 조화를 이룬다"고 추천했다.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샤르도네 라인은 한국의 된장찌개와 비빔밥과 같은 일상식과도 조화를 이룬다. 샤르도네 품종은 1971년부터 티렐이 상업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프랑스 스타일을 내는 샤르도네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과실 풍미가 나지만 부드러운 게 특징"이라며 "오크 숙성이 받쳐주기 때문에 고기랑도 어울리며, 비빔밥 된장찌개 등 한국음식과도 궁합이 맞다"고 밝혔다.

◆ 한국, 선물시장 각광 "프리미엄 와인 성장 기대"

티렐은 한국에서도 프리미엄 와인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술 문화가 바뀌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밸브 이사는 "지난 20년간 한국에 10번 왔는데, 과거엔 소주를 많이 원샷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엔 달라진 것 같다"며 "한국에도 와인 문화가 확산하면서 프리미엄 와인에 더 많이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분석했다.

와인이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설을 앞두고 이마트는 역대 최대인 100억원 규모로 와인 선물세트를 선보였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밸브 이사의 생각이다. 그는 "티렐의 판매전략은 '마셔봐야 한다'는 것"이라며 "1만원대 와인부터 접했어도 미각이 발전하면 티렐의 와인이 좋은 지 알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국내에서는 미슐랭 레스토랑에 티렐 와인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한국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게 목표이고, 프리미엄 다이닝 레스토랑과 HORECA(호텔·레스토랑·카페)를 중심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티렐은 최고의 세미용 와인으로 인정받겠다는 게 목표다. 밸브 이사는 "샤블리 최고의 화이트 와인이 와인의 고유명사가 된 것처럼 헌터밸리 세미용하면 '최고의 화이트와인'으로 인식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