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이 임차인과 오랫동안 임대차 계약을 유지하다가 임차인을 내보낼 때 밀린 월세를 얼마나 공제할 수 있는지를 두고 임차인과 다투는 경우가 있다. 월세도 오랫동안 청구하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되는 소멸시효가 적용되는데 이와 관련해 어떤 법리가 적용되는지 알아보자.
A는 B가 소유한 상가를 보증금 1억원, 월세 200만원으로 임차해 10년 이상 영업해왔다. A는 영업 상황에 따라 월세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 가끔 B가 밀린 월세를 언제 줄거냐고 물었지만 A는 너무 바쁜 나머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B도 A의 밀린 월세가 많지 않고 보증금도 충분하니 지금 못받더라도 나중에 보증금에서 공제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연체 사실을 잊고 지냈다.
그러던 중 A는 경기 악화로 더 이상 영업이 힘들다고 판단해 B에게 이번 계약기간 만기에 맞춰 영업을 그만두겠다고 통지했다. A는 보증금 1억원을 거의 대부분 돌려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B가 은행에서 그간 거래내역을 뽑아서 밀린 월세를 계산해 보니 총 10개월치 2000만원이었다. B는 A에게 밀린 월세 2000만원과 기타 비용 등을 공제하고 돌려줄 돈이 7500만원이라고 통지했다.
A는 밀린 월세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고 있다가 B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보증금 1억원을 새로운 사업자금으로 쓸 생각이었던 A는 고민하다가 월세도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세히 알아보니 밀린 월세는 3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고 했다.
밀린 월세 중 3년이 지난 월세는 총 8건, 1600만원이었다. A는 B에게 월세를 공제하더라도 공제 시점을 기준으로 3년이 지난 1600만원에 대한 월세 채권은 소멸시효가 지났으니 공제하면 안되고, 밀린 월세 400만원과 기타 금액만을 공제한 뒤 나머지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A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법상 사용료 기타 1년 이내 기간으로 정한 금전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임대차에서 월세도 보통 1년 이내 기간으로 정해 금전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채권으로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그런데 임대차 기간 중 밀린 월세를 임대차 종료 시 보증금에서 일괄 공제하기로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밀린 월세에 대한 소멸시효는 임대차계약에서 정한 지급 기일부터 기산돼 3년이 지나면 완성된다. 따라서 통상의 경우처럼 월말에 월세를 지급하기로 했다면 월말에 미지급한 때부터 월세마다 건별로 소멸시효가 진행된다. A의 경우도 밀린 월세는 건별로 원래 지급했어야 할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볼 수 있고 그때부터 3년이 지난 밀린 월세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멸시효 완성은 월세를 더 이상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이런 경우라도 판례는 임대차보증금의 특수성을 고려해 소멸시효가 완성된 월세도 계약종료 시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임대차 존속 중 차임이 연체되고 있음에도 임대차 보증금에서 연체 차임을 충당하지 않고 있었던 임대인의 신뢰와 차임 연체 상태에서 임대차 관계를 지속해온 임차인의 묵시적 의사를 감안하면 연체 차임은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A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즉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연체된 경우 연체된 월세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은 연체된 월세 전부를 공제하고 나머지 금액을 임차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국민은행 WM투자자문부 변호사 jonggyu@kbf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