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 생산량 기준 세계 3위이자, 일본 1위 철강사인 일본제철이 1934년 창사 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지난 7일 2019회계연도 3분기(2019년 10~12월) 실적 발표에서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에 사상 최대 규모인 4400억엔(약 4조7835억원)의 순손실을 낼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실적발표 전 일본 내 산업계와 증권업계에선 이 회사가 2019회계연도에 400억엔(약 4348억원)의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제철은 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 내 15개 고로(高爐·용광로) 중 4기를 폐쇄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히로시마현 구레제철소는 2023년 9월 말까지 모두 정리키로 했다. 고로를 보유한 공장을 폐쇄하는 것은 일본제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산업계에선 일본제철이 인수합병(M&A)을 통한 덩치 불리기를 끝낸 뒤 시작된 공급과잉 국면에서 경영 효율화에 실패한 것을 ‘패착’으로 분석한다. 일본제철은 2012년 스미토모금속공업, 2016년 닛신제강을 잇따라 삼켜 한때 세계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2017~2018년부터 중국이 본격적인 증산에 나선 이후에 구조조정을 게을리했다. 그 결과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조강 1t당 이자·세금 차감전 이익(EBIT)이 2018년 40달러로, 포스코(116달러), 중국 바오우강철(107달러)에 크게 뒤졌다. ‘덩치’ 키우기에 주력하느라 기술력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 기술 확보’에 주력한 포스코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제철이 지금부터 추진하는 ‘군살빼기’가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중국발(發) 공급과잉에 ‘우한 쇼크’ 등에 따른 수요 부진까지 겹쳐 철강업 불황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려워서다.
일본제철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1960년대부터 세계 철강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960년대 후반 한국 철강업계가 ‘제철보국(製鐵報國)’ 일념 하나로 맨땅에 섰을 때 기초부터 전수해 준 곳이 일본제철이었다. 브라질 철강사 우지미나스, 중국 바오우강철의 성장에도 도움을 줬다.
어떤 기업도 영원할 수 없음을 절감케 한다. 삼성전자라고 해서 한순간에 일본제철의 뒤를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일본보다 경제 기초체력이 부실한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