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말수 없었던 한 소년은 세계 영화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4개나 품에 안았다.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에 이어 최고 영예인 작품상까지 4관왕에 올랐다.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꿈에서 깰 것 같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제가 1인치 장벽(자막)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미 장벽은 무너지고 있는 상태라 때늦은 소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제 외국어 영화가 이런 상을 받는 게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기생충'의 흥행 이유에 대해 봉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차서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고 분석했다.
할리우드 진출 계획에 대해 질문하자 '기생충' 대사를 차용해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로 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봉준호 감독은 1969년 9월 14일 대구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은 영남대 미대 교수를 지낸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봉상균이다. 봉 감독이 롤모델로 꼽아온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 타이틀을 그리기도 했다.
봉 감독의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소설가 박태원의 둘째 딸이다.
봉 감독의 형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며 누나는 패션디자이너이다. 아내 정선영 씨는 봉 감독이 연출한 단편 '지리멸렬'에 편집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슬하에는 영화감독 봉효민을 두고 있다. 2017년 YG케이플러스의 웹무비 '결혼식'을 연출했다.
봉 감독은 군 복무를 마친 뒤 연세대에서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고 단편 영화를 연출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2000년 '플란더스의 개'로 상업영화에 입봉했지만 흥행 참패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영화를 통해 배우 송강호와도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이후 2006년 '괴물'로 1300만 관객을 들이며 천만 감독이 됐다. 김혜자, 원빈 주연의 '마더'(2009)로 디테일한 연출력을 증명했고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등이 출연한 '설국열차'(2013)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이후 넷플릭스 '옥자'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봉 하이브(Bong hive· 봉 감독 열성 팬덤)'라는 신조어를 낳게 될 정도로 화제가 된 것은 영화 '기생충'(2019) 덕이다.
그는 '기생충'으로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2020년 1월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고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에선 한진원 작가와 각본상을, 작품은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예상했던 대로 각본상과 국제영화상을 받았고, 어려울 것이라 예상됐던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받으며 4관왕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해 '조조 래빗'의 타이카 와이티티, '나이브스 아웃'의 라이언 존슨, '빅쇼트' '바이스'의 애덤 매케이 등 유명 감독이 봉준호를 향한 '팬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는 "미국에서 같이 다녀보면 봉 감독의 인기는 예상과 상상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에 오르자 세계의 유명인들도 축하 대열에 동참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존 추 감독은 "기생충 기생충 기생충 기생충!!!! 기생충이 해냈다. 봉 감독이 해냈다"라며 기뻐했다. 미국의 흑인 여성 감독 에바 두버네이는 자신의 트위터에 기생충의 한 장면을 게재하고 "엄청나고,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앤드루 양은 "와우, 영화를 봐야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아이 필 프리티'의 부시 필립스는 "기생충이 수상하는 장면을 보고 솔직히 전율이 올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배우 올리비아 문도 "아시아계로서 매우 벅찬 느낌"이라고 축하했다.
봉 감독의 인기는 '기생충'의 작품성에 인간적인 면모, 유머러스한 언변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매 작품바다 디테일하고 치밀한 설정으로 '봉테일'이란 별명을 얻었다.
봉 감독의 '영혼의 동반자'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20년간 작업하며 늘 봉준호 감독이 늘 유머러스하고 연기를 굉장히 잘한다. 실제 연기를 보여주면 저희들이 따라할 정도였다. 그래서 좋은 연기가 나온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완벽주의자적 성향은 놀라운 통찰력과 만나 사회전반을 꿰뚫는 개성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한 작품 안에도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물을 넘나들어 '봉준호가 장르'라는 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봉 감독은 "정신과 의사가 내가 불안감이 심하다고 했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박증이 있다"라며 "영화제작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스카 이후의 계획에 대해 "계속 준비하던 게 있었다.이 상으로 인해 뭘 바꾸거나 모멘텀이 돼 바뀌고 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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