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다시 민낯 드러낸 K의료시스템

입력 2020-02-10 18:02
수정 2020-02-11 00: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막는 최일선인 선별진료소의 절반 이상은 민간 의료기관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부 방침이 선별진료소까지 내려오고 이를 이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배경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국내 한 중소병원 의사의 말이다. 이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은 사태 발생 초기부터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간병원에서 운영하는 선별진료소는 각 병원들이 원내로 감염 환자가 들어오지 않도록 막기 위해 꾸린 민간시설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인건비, 시설비용 등은 해당 병원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곳에 확진 환자 검사와 환자 분류 업무를 맡겨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보건소의 태도도 문제다. 일선 병원에 시한을 못 박아 선별진료소 개설을 독려하는 일도 적지 않다. 정부가 진단검사가 가능한 선별진료소 명단을 발표하면서 해당 의료기관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민간 의료기관의 자체 방역망에 무임승차하려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을 두고 국내 의료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평가하는 전문가가 많다. 국내 공공의료 병상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미국의 공공병상 비율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상상황에 작동해야 할 공공의료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민간 의료기관에 의존하다 보니 혼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기관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것도 문제다. 정부는 지난 7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의심된다고 의사가 판단한 환자는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침을 바꿨다. 광주21세기병원과 전남대병원에서 의심환자가 나왔다고 검사를 의뢰했지만 관할 보건소에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의심환자는 나중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일선 의사의 판단이 중요해졌지만 의사들은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하소연한다. 한 동네의원 의사는 “대규모 감염병 사태가 터지면 감염 환자 내원 등으로 생긴 손해는 고스란히 병원이 떠안아왔다”며 “의심스러운 환자가 있을 때 진료를 하지 않는 등 과잉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자칫 의료법 위반이 될 수 있어 딜레마”라고 했다.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등 방역체계 강화를 통해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겠다.” 2017년 4월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집에 담긴 내용이다. 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공약을 실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