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조용한 천재' 팀 쿡

입력 2020-02-07 18:12
수정 2020-02-08 00:23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2011년 8월 11일. 췌장암으로 요양 중이던 잡스는 회사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에게 “집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쿡이 도착하자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줘. 이제 당신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되는 거야.” 애플의 경영승계는 이렇게 조용히 이뤄졌다.

6주 뒤 잡스가 타계하자 세상은 애플의 앞날을 회의적으로 봤다. ‘묵묵한 살림꾼’ 역할만 하던 쿡이 ‘혁신의 아이콘’ 잡스만큼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다. 그러나 쿡은 ‘준비된 적임자’였다. 그는 애플의 실적을 사상 최대로 끌어올렸다. 애플 주가는 최근 1년 동안에만 두 배 올랐다. 시가총액은 1조4000억달러로 미국 1위다.

그는 지난해 아이폰을 비롯해 애플워치·에어팟 등 웨어러블 기기 분야 실적을 함께 끌어올렸다. 에어팟 출하량은 5870만 개로 점유율 54.4%를 기록했다. 스마트워치 판매량도 3070만 개로 시계 강국 스위스 회사들의 전체 판매량 2110만 개보다 약 1000만 개 많았다.

전문가들은 “애플의 최근 사업은 잡스가 일궈놓은 아이폰에 쿡이 만든 웨어러블 기기와 서비스를 더하는 방식”이라며 쿡을 “세계 시장의 어려움 속에서 다양한 수익원 창출에 성공한 ‘조용한 천재’”라고 평가하고 있다. 쿡은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조용한 CEO’에 새벽 4시부터 업무에 몰두하는 ‘일벌레’다.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결단력이 있었다.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IBM, 컴팩을 거쳐 37세 때 애플 사업운영부문 수석부사장으로 합류했다. 당시 애플은 제조관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는 잡스를 만난 지 5분 만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재고를 30일 치에서 6일 치로 줄였고, 아웃소싱을 본격화해 흑자 전환을 이끌었다.

그가 앞으로도 ‘애플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20년간 애플을 취재한 린더 카니는 “애플의 위대한 3막은 의학과 보건, 피트니스, 자동차, 스마트홈 등 아직 컴퓨팅이 정복하지 못한 무대에서 펼쳐질 것”이라며 “그의 미래는 무척 밝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