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퇴사하면서 회사 측에는 해고된 것으로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사업자가 자발적 퇴직자에게 “퇴직금보다 더 많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해고 처리를 먼저 권유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한경 2월 7일자 A13면). 회사가 부담해야 할 퇴직금을 고용보험에 떠넘기는 사업자들의 범죄행위가 횡행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비자발적 이직’이라는 수급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이 불법을 저질러가면서까지 실업급여를 받아내고 있는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고용보험 가입 문턱을 낮춰 실업급여 지급액을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늘렸고, 상·하한액도 높여 ‘실업급여 매력도’를 올려놨을 뿐 부정수급 대책에는 손을 놓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실업급여 부정수급액은 198억1500만원으로 전년(196억2100만원)보다 늘었다. 적발된 규모가 그렇다는 것일 뿐, 노사가 짜고 ‘위장해고’ 등으로 처리해 적발되지 않은 부정수급 규모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실업급여에서만 부정수급 행태가 판을 치는 게 아니다. 정부가 청년을 고용한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1인당 2700만원의 청년추가고용장려금에서도 불법 수급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이 이를 포함한 고용장려금 지원실태를 감사한 결과 2016~2018년에 총 669명에게 67억8374만원이 잘못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 보장, 영·유아와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복지,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급여(사회보장급여)와 정부 보조금 역시 줄줄이 새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올해부터 앞다퉈 지급하기 시작한 농민수당을 받기 위해 도시 주민들이 값싼 농지를 사들이는 ‘무늬만 농민’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눈먼 돈’이 돼버린 각종 복지 및 고용 관련 지원금을 둘러싼 모럴해저드와 부정수급이 늘어나자 정부도 단속에 고삐를 죄고는 있다. 정부는 올 상반기 사회보장정보시스템과 금융정보조회시스템을 자동으로 연계해 부정수급을 철저히 걸러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뛰는 단속 위에 나는 불법’인 경우가 태반이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의 예에서 보듯이 노사가 공모해 거짓 신고를 하면 행정시스템으로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튜브에는 각종 지원금 수당을 안내한다는 제목을 내걸고 불법·편법으로 수령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까지 나돌고 있다.
부정수급을 없애는 궁극의 방법은 복지 설계 자체를 새로 하는 것이다. 정밀한 수요 파악과 우선순위에 따라 엄정한 예산 배정 및 집행을 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식으로 마구잡이로 퍼주고 예산이 바닥나면 예비비를 털어서라도 메꾸는 식이라면 어떤 단속으로도 모럴해저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