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美 대선에서 샌더스가 두렵지 않은 5가지 이유

입력 2020-02-07 08:10
수정 2020-05-06 00:03

(기자) "올해 투자자들이 가장 신경써야할 위협요인이 있다면 무엇일까."
(월가 관계자) "그건 미 대선이다."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체결된 뒤 월가가 가장 주목하는 위험은 미국 대선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경우 1분기 성장률을 잠시 낮췄다가 2분기에 회복되는 일시적 충격에 그칠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지난 3일 민주당이 아이오와주에서 코커스를 치렀지만, 뉴욕 증시의 투자자들은 예상과 달리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당초 여론조사에서 한창 기치를 올리던 버니 샌더스가 1위를 차지, 대세로 떠오르면서 증시에 위협이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습니다.

뉴욕 증시는 지난 3일부터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수소문했습니다. 이유는 대략 5가지로 정리됩니다.


① 트럼프 대통령과 붙었을 때 당선 확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보이던 조 바이든이 꺾어졌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강세를 보여온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장점이 확실한 후보입니다. 중도파로 무당파층을 흡수할 수 있는데다, 버럭 오마바 행정부 때 부통령을 지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흑인들의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핵심주인 펜실베이니아 출신입니다. 20명의 대선 선거인단을 뽑는 펜실베이니아는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이었지만 2016년 트럼프 지지로 돌아서 트럼프의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했습니다. 이 펜실베이니아를 찾아올 수 있는 후보가 바이든이었지요.

대선 선거인단 538명 중 306명을 얻었던 트럼프에게서 20명을 빼앗는다면 286표가 남습니다. 과반인 270명을 겨우 넘습니다. 또 다른 스윙스테이트인 플로리다(29명), 미시간(16명), 위스콘신(10명) 등 트럼프가 2016년 차지했던 한 두개 주만 되찾아와도 트럼프를 물리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지난 3일 코커스가 시작되자마자 바이든의 세가 약하다는 사실이 잇따라 보도됐습니다. 바이든은 '2위는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4위까지 처졌습니다. CNBC는 지난 4일 "바이든 캠프가 기부자들에게 선거운동을 계속하겠다며 설득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기부자 중에서 바이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바이든 외에는 다들 고만고만하다. 트럼프와 결선에서 붙으면 승산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오와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한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은 동성연애자로 흑인들의 표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는 급진 좌파로 확장성이 떨어집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나이가 많은데다 세계 9위 거부이면서 유태인이란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② 탄핵 조사로 탄핵되진 않아도 타격받을 줄 알았던 트럼프의 지지율이 오히려 높아졌다

민주당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원래부터 민주당은 실패할 것으로 예상했을 것입니다. 공화당이 53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에서 탄핵을 위해 필요한 67표를 얻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탄핵을 밀어부친 건 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부도덕성을 드러내 올해 말 대선에서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49%로 취임 이후 최고치로 올랐습니다. 결국 탄핵 조사로 가장 타격을 받은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 드러났습니다.

③ 민주당내 중도파의 표가 좌파보다 더 많다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현재 개표율 97%)를 보면 걱정했던 좌파(샌더스, 워런)의 득표율은 합쳐서 44.3%에 그칩니다. 반면 부티지지와 조 바이든 등 중도파의 표가 55.7%로 더 많습니다.
아직도 민주당 내에서는 중도파가 중심임이 확인된 겁니다.
앞으로 몇 번의 경선을 거쳐 후보들이 정리되고 나면 중도파가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④ 가장 우려되던 버니 샌더스는 당내 역풍이 크다

이번 코커스에서는 기술적 문제로 개표 차질이 빚어져 아직도 개표율이 97%에 그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이를 놓고 민주당내 가장 큰 파벌인 힐러리 클린턴 파가 샌더스를 견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설이 나옵니다. 선거 즉시 1위로 확인되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며칠이 지나도 누가 1등인지 모를 정도로 혼선을 빚어지면서 여론의 주목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런 음모론이 나올 정도로 민주당내에서는 샌더스에 대한 비호감이 높습니다. 힐러리측은 2016년 패배의 원인 일부가 샌더스에게 있다고 봅니다.

힐러리는 지난달 21일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샌더스에 대해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고 아무도 그와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이룬 게 없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힐러리는 "모두 그저 헛소리인데, 사람들이 빨려 들어간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도 말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인 폴 크루그먼 전 뉴욕대 교수는 이날 트위터로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모든 당원이 단결해 그를 지지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주당내 분열을 우려하고 있는 겁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개표 차질 사태를 보면서 "민주당은 집권 능력이 없다"는 한탄이 나옵니다. 현재 개표 지연뿐 아니라 집계 자체의 부정확성까지 지적되면서 민주당은 신뢰성에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⑤ 샌더스가 혹시 대통령이 된다해도 시장은 계속 오를 것이다

샌더스는 건강보험 공영화, 학자금 대출 탕감 및 대학등록금 무료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100% 달성, 셰일오일 채굴 금지, 부유세 도입, 월가 은행 규제 강화 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두 월가가 싫어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샌더스는 건강보험 공영화, 학자금 대출 탕감, 신재생에너지 100% 달성 등을 위해 현대통화이론(MMT)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부채를 신경쓰지 않고 무한대로 돈을 찍어내 이들 목적을 이루는 데 쓰겠다는 겁니다.

실제 MMT가 시행되면 시중엔 엄청난 달러가 풀릴 수 있습니다. 뉴욕 증시는 흥청대는 유동성 속에 오를 수 밖에 없겠지요. 월가 관계자는 "헬스케어, 은행, 에너지 등 종목별로는 수익률이 차별화될 수 있지만 시장 전체적으로는 지금보다도 더 좋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달 3일은 이른바 '슈퍼 화요일'입니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등 14개주가 한꺼번에 경선을 벌이는 날로 사실상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결정됩니다. 전체 선거인단의 34%를 선출하니까요.

그동안 월가는 슈퍼화요일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식으로 민주당 경선이 돌아간다면 대선 변수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 수도 있겠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