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가 되는 '리더의 말'…권력의 정점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다

입력 2020-02-06 15:08
수정 2020-02-06 15:11
훌륭한 지도자에 목마른 시대다. 훨씬 더 잘 될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을 떠올릴 때면 착잡함과 아픔이 흐른다. 왜 권력을 쥐고 나면 훌륭한 지도자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 사회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가.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론인 박보균이 쓴 《결정적 순간들》(중앙북스)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리더십은 역사를 연출한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 인물들의 역사적 현장을 방문해서 결정적 순간에 발휘된 리더십의 진수를 탐구한다. 특히 권력의 정점에까지 올랐던 인물들의 리더십이 언어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파헤친다. 누군가를 이끄는 중요한 수단은 말이다.

저자의 글은 특이할 정도로 짧고 단호하다. 그래서 글을 읽어가는 동안 경쾌함과 긴박감이 함께한다.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치 역사의 현장을 독자들이 직접 방문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는 모두 24인이 등장한다. 처칠, 드골, 링컨, 마오쩌둥, 레닌, 스탈린, 무솔리니, 히틀러 등이다. 각 인물들은 언어, 결정적 장면, 지도력의 경연무대, 망국과 부활의 외교 현장이란 4개의 큰 주제로 나눠진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고작 7개월이 지난 시점에 처칠은 미국 미주리주 볼턴에서 ‘철의 장막’이란 언어로 20세기 후반 세계 질서를 규정했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방문한 저자는 그곳을 배경으로 말을 중심으로 한 처칠 리더십의 진수를 생생하게 전한다. 처칠의 전기작가 마틴 길버트는 “처칠은 말의 힘을 이해하고 휘둘렀다. 말은 그의 가장 설득력 있는 무기였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리더의 말이 어떤 무기인지를 이렇게 평가한다. “권력 운영은 말이다. 위대한 지도력은 언어로 작동한다. 말은 대중의 상상력을 장악한다. 역사의 전진에 국민의 동참을 이끌어낸다. 처칠의 말은 위기 때 명쾌했다.” 저자는 아쉬움에 질책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 한국 정치의 말은 어설프다. 격조는 떨어지고 실천은 미흡하다. 경륜의 빈곤과 비전의 결핍은 언어에서 드러난다.”

처칠이 풀턴을 방문했을 때 그의 나이는 일흔둘이었다. 풀턴 연설을 발판으로 그는 재기에 성공했고 1951년 그의 나이 77세 때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른다. 처칠을 떠올릴 때면 끝까지 참아내면서 인생의 반전 드라마를 써내려간 인물이 떠오른다. “과거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절대 굴복하지 말라”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다” 등은 모두 그가 남기고 떠난 말이다.

장기간 드골을 추적한 저자는 그가 묻혀 있는 작은 시골마을 콜롱베 레 되 제글리즈로 독자를 안내한다. 방문하는 길은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라는 드골이 남긴 문장으로 시작된다. 프랑스 국민에게 “대의를 위해 힘을 합치자”는 이 호소만큼 가슴에 울림이 있는 것이 또 있을까. 혼란의 시대에 앞날을 비추는 빛을 찾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리더십 서적이다.

공병호 < 공병호TV·공병호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