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동안 하루평균 일곱 시간씩 곡을 썼습니다. 어느 날엔 12시간 이상 작곡만 했죠. 단 한 마디 쓰는데 두세 시간 걸리기도 했고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곡을 완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 만족’했던 그 곡은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야상곡 3번’. 현대음악 작곡가 최재혁(26)은 이 작품으로 2017년 스위스 제네바국제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우승했다. 콩쿠르 우승은 작곡가로서 그의 인생에 변곡점이었다. ‘줄리아드음대에서 작곡 공부하는 애’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작곡가’가 됐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를 찾은 최재혁은 “예전엔 연주자 친구들에게 ‘내 곡 좀 봐달라’고 밥을 사줘가며 부탁했는데 이젠 세계 곳곳에서 작곡 의뢰가 들어온다”며 “콩쿠르 우승은 제 작품을 더 많은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베토벤이 상상한 미래’ 공연을 선보였다. 최재혁이 이끄는 앙상블블랭크가 베토벤의 현악4중주 ‘대푸가’와 현대음악가 헬무트 라헨만의 첼로 독주곡 ‘압력’,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Dr.K 육중주’ 등을 연주했다. 최재혁이 작곡한 ‘셀프 인 마인드 Ⅳ’도 들려줬다.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는 베토벤의 음악이 후대 작곡가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보여주기 위한 무대였다. 그는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작곡가가 베토벤”이라며 “평소 친구들과 ‘베토벤이 지금 살아 있다면 어떤 음악을 쓸까’를 주제로 자주 얘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현대음악은 어려운 만큼 매력도 크다고 했다. 흔히 ‘음악의 3요소’로 꼽는 멜로디와 리듬, 화성은 현대음악에서 꼭 필요한 개념이 아니다. “멜로디보다 음색, 리듬보다 에너지, 화성보다 분위기에 더 가치를 둘 수 있습니다. 어떤 흐름에 맞춰가는 형식이 아니라 작곡가 개개인의 언어라 할 수 있죠. 쿵쾅거리는 소음이나 찍찍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음악에서 중요한 상상력을 해치지 않기 위해 그는 컴퓨터가 아니라 펜으로 곡을 쓴다. 컴퓨터로 하면 악보를 소리로 바로 들어볼 수 있어서다. 그는 “일단 미디음으로 듣고 나면 악보 속 상상의 소리들이 사라져 버린다”며 “하나하나 신중하게 음표를 넣기 위해 썼다가 지울 수 있는 연필이 아니라 펜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작곡한 곡이 모두 50여 편이다. 그는 “누군가가 ‘괜찮은 곡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 보낼 수 있는 곡은 10편 정도”라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시우가 뉴욕 메트로폴리스 앙상블과 함께 연주할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는 5월 미국 뉴욕에서 초연한다. 캐나다 벤프음악축제의 위촉 작곡가로 초대돼 현악4중주곡도 위촉받았다. 2021년엔 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프랑스 앙상블 ‘앙탕콩탱포랭’이 앙상블 버전으로 세계 초연한다.
뉴욕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지낸 앨런 길버트도 그에게 작품을 의뢰해 곡을 보냈다. 그는 “위촉을 받아 새 작품을 쓸지 아니면 제 작품 중 골라 연주할지 더 협의해봐야 한다”며 “2022년이나 2023년 연주하는 일정”이라고 말했다.
줄리아드 석사과정을 마친 최재혁은 올가을부터 베를린에서 지휘를 공부한다. 그는 2018년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슈톡하우젠의 ‘3개의 오케스트라와 3명의 지휘자를 위한 그루펜’을 연주하는 무대에 사이먼 래틀, 덩컨 워드와 함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지휘할 때 작곡과 또 다른 성취감을 얻어 앞으로도 꾸준히 두 분야를 병행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현대음악을 어렵게만 느끼는 이들에게 그는 말했다. “익숙한 게 편할 수 있어요. 현대음악은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이게 뭐지’라는 호기심을 갖고 들으면 재밌어져요. 그런 ‘물음표’를 달아주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