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 체제’를 빼고 한국 현대사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담론 수준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에 실질적 변화가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가 1987년 한 해에만 노동조합이 2675개에서 4103개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노조 설립붐은 1989년 절정에 달해 이때는 7883개로 급증했다. 이른바 ‘87체제’로 인한 큰 변화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출범을 꼽기도 하는 배경이다.
지금 법외노조 상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연원도 1987년으로 거슬러간다. 그해 대통령직선제를 담은 ‘6·29선언’ 3개월 뒤 결성된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가 그 전신이다. 전교협이 2년 만인 1989년 전교조로 변신했을 때 사회적 논란이 대단했다. “선생님이 노동자라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전통적 표현이 여전히 어색하지 않던 때였다. 교단을 장악하기 시작한 교사 노동조합은 논란거리 그 자체였다.
전교조는 유일한 합법 교사단체였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아성을 뚫고 급성장했다. 87체제로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져온 데 전교조는 큰 역할을 했고, 그러면서 스스로도 꾸준히 세를 키워왔다. 정당 활동도 활발하게 했고, 광화문 대형 집회에서도 목소리를 크게 내왔다. 문제는 정치 편향된 학교교육이었다. 교실에 특정 이념교육이 넘치고 좌경화됐다는 지적은 학부모만의 걱정이 아니었다.
엊그제 새로 출범한 ‘올바른 교육을 위한 전국교사연합(올교련)’은 ‘전교조 교육’에 맞서는 교사들의 자발적 단체다. 시작 회원은 60여 명. 외형만 보면 아직은 말 그대로 골리앗과 다윗이다. 그래도 지향점이 분명하고 철학도 명확하다. “정치 편향 수업, 교권 및 학생권리 침해, 강압적 성 이데올로기 교육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취지에 맞춰 구호도 마련했다. 안심하고 아이를 보낼 수 있는 학교교육, 미래 역량을 갖추는 경쟁력 있는 교육, ‘교사인권’ ‘학생인권’ 구분 않는 교육 등이다. 무엇보다 거대 담론이 없다.
공부하는 교사가 되겠다며 올교련은 ‘사제(師弟)동행’이라는 말을 내세우고 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던 것에서 보면 놀랄 만한 관점의 변화다. 저출산으로 학생은 급감하고 있다. AI(인공지능) 유튜브 등의 보편화로 학교교육의 의미도 퇴락하고 있다. 교단의 공룡 교총과 전교조 사이에서 ‘진짜 교육’을 하겠다는 올교련의 행보가 주목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