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가 험지냐? 황교안은 겁쟁이란 말을 들어도 싸다." 종로 출마를 망설이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해 한 당내 인사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종로 출마를 공식화하고 이미 선거운동에 돌입한 가운데 황교안 대표는 출마 지역구를 쉽사리 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황 대표는 지난 1월 3일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공개 선언했지만 벌써 한 달째 지역구를 정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종로는 현직 대통령이 유권자인 지역구라 '정치 1번지'로 불린다. 총선 전체 판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라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출마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종로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오래 전부터 황교안 대표의 종로 출마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이 전 총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상대 당의 결정에 대해 제가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제 개인의 마음을 말씀드리자면 (황 대표와) 신사적인 경쟁을 펼쳤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사실상 맞대결을 제안했다.
정치권에선 황 대표가 이 전 총리에게 패할까봐 종로 출마를 망설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S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달 28~30일 종로구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후보인 이 전 총리는 53.2%의 지지율을 기록, 26.0%에 그친 황 대표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지역구 유권자 500명(응답률 17.1%)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조사 방법은 성·연령·지역 비례에 따른 할당 추출로 유선 전화면접(16.6%)·무선 전화면접(83.4%)으로 진행됐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 자세한 결과는 SBS뉴스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당내에서는 홍준표, 김태호, 김병준 등에게는 험지 출마를 강권했던 황 대표가 종로 출마를 망설이는 것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종로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지역구였지만 15~18대 총선에서는 보수 정당이 승리한 지역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오세훈 후보가 크게 앞서다 역전당했다. 종로는 험지가 아니다. 당 대표 본인은 종로 출마를 망설이면서 다른 중진들에게 험지 출마하라고 하니 그쪽에서 반발하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물갈이 대상에 오른 일부 중진 의원들은 황 대표 종로 출마 기피를 거론하며 본인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3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황교안)당 대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론조사를 해대고 당 대표급들 다른 주자들에게는 수도권 험지에 나가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당은 최근 황 대표 출마지를 물색하기 위해 수도권 여러 곳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결국 (황 대표가)등 떠밀려 종로에 나갈 것"이라며 "여론조사에서 이 전 총리의 절반밖에 안 나온다고 해서 그걸 피하면, 전국적인 선거에 막대한 지장을 주지 않느냐"고 전망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 종로 출마는 저쪽(더불어민주당) 전략에 휘말리는 것이다. 민주당엔 전국 유세에 내세울 대선주자급 인물이 많지만 우리 당엔 사실상 황 대표 뿐이다. 민주당은 대선주자급 인물들이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를 할텐데 황 대표가 종로에 묶여있으면 전체 선거에 마이너스"라고 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