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시민 정신의 국유화

입력 2020-02-04 18:12
수정 2020-02-05 00:30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며칠 전 ‘눈물의 1승’을 거뒀다. ‘유치원 3법’에 반대해 벌인 개학연기 투쟁을 빌미로 서울교육청이 내린 ‘설립 인가 취소 처분’에 관해 서울행정법원이 ‘과도한 조치’라며 취소를 명령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민간에 대한 ‘국가 폭력’이라며 저항한 한유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공공성 빙자한 국가의 폭주

“법질서 회복을 위해 인가 취소가 긴급하다”던 서울교육청의 조치는 애초부터 무리수였다. 과격·불법시위로 지도부가 감방을 들락거리는 민주노총 전교조 등 수많은 단체도 멀쩡하지 않은가. 별 기소나 입건조차 없는, 즉 범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유총이 해산된다면 헌법상 결사·집회·표현의 자유는 형해화되고 말 것이다.

‘교비를 꿀꺽해 명품백과 성인용품을 샀다’는 자극적 폭로 이후 사립유치원들은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런 유치원 운영을 불법이나 비리로 단정해선 안 된다. 유치원 설립자는 사재를 투입해 교육사업 중인 자영업자로서 수입처분 권한을 갖는다는 게 대법원의 거듭된 판단이다. 법인과 개인사업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혈세를 빼먹었다’는 비난도 상당 부분 오해에서 비롯됐다. 유치원들은 국가가 학부모에게 지급한 지원금의 수납을 대행했을 뿐 직접 국가보조금을 받은 게 아니어서 횡령으로 보기 힘들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지난달 통과된 ‘유치원 3법’은 분명 과잉입법이다. ‘공공성 강화’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설립자의 사유재산을 사실상 몰수하는 결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유치원(법인) 이사장의 원장 겸임을 금지한 탓에 설립자는 급여를 받을 길도 막막해졌다. 여기에다 폐원까지 엄격히 통제한다니 교육당국에 사립유치원을 영구적으로 무상 임대해주는 것과 비슷한 결과다. 이는 사유재산을 공공 필요에 의해 제한할 때는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한 헌법 23조와 배치된다.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약이라는 비판에도 유치원 3법 개정이 시민들의 큰 지지로 결행된 게 무엇보다 걱정스럽다. 대중은 유치원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고 교육당국의 프레임에 무비판적으로 빠져드는 행태를 보였다. 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진실에 무관심하며 정신의 소유권을 나라로 위탁한 듯한 이런 태도를 ‘정신의 국유화’라고 불러야 할지. 누군가의 재산권이 부정되고, 경영권이 침해되고, 자유권이 박탈돼도 나와 무관하며 공동체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사고는 순진하다. 내일 바로 내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사고를 포기하고 정부 결정을 추종하면서 나랏일에 참여한다고 착각하는 국유화된 정신의 소유자들은 촛불 시위 이후 크게 늘었다. 공지영 작가가 그런 부류다. “문프께 모든 권리를 양도했고, 그분이 나보다 조국을 잘 아실 테니까”라며 그는 조국 교수 지지를 선언했다. 국가 지도자의 견해를 자신의 ‘절대 믿음’의 근거로 버젓이 제시하는 지성인의 등장은 시민정신이 국가에 포획되고 있다는 강력한 방증일 것이다.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는 참여연대 민변 같은 소위 ‘진보단체’들이 정부 2중대로 맹활약 중인 참담한 현실은 ‘무지는 힘’이라던 《1984》 속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연상시킨다.

정부 추종하는 맹목 탈피해야

‘정신의 국유화’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국유화보다 부작용이 압도적이다. 연쇄적인 국유화 쓰나미를 부를 수 있어서다. 스스로의 판단을 포기하고 누군가의 생각을 추종하며 자유를 위한 저항을 포기한다면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은 존립하기 힘들다. 획일과 맹목으로 빠져드는 시민이 많을수록 궤도이탈에 대한 권력의 유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