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부가 일요일이자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인 2일 저녁, 긴급 휴교령을 내렸다. 전국의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적어도 1주일간 임시 휴학조치를 취하도록 결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을 막기 위한 발빠른 조치다.
이번 휴교령은 주말 사이에 긴박하게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토요일이던 1일에 교육훈련부와 보건부가 총리실에 휴교령을 건의했고, 다음날에 곧바로 응우옌 쑤언 푹 총리가 해당 부처에 공문을 발송했다. 길었던 설 연휴를 끝내고 3일부터 자녀를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던 학부모들은 2일 저녁 무렵, 학교에서 날라 온 임시 휴학 관련 메일을 볼 수 있었다.
베트남 정부는 휴교령 외에도 토요일이던 1일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모든 비행기의 운항을 중단시켰다. 첫 발표 땐 중국 본토에 홍콩, 마카오, 대만까지 포함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조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일엔 국적을 불문하고 최근 14일 내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은 입국을 금지하도록 항공사에 통보했다. 주베트남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베트남 출입국 관리국이 3일부터 입국 심사시 여권에서 중국 방문 날인을 확인할 것”이라며 “14일 내 중국 방문력이 있는 한국인은 15일간의 무비자 베트남 입국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의 이 같은 강력한 조치는 2일 오전에 최종 확진자로 발표된 7번째 환자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73세의 베트남계 미국인인 이 환자는 1월15일 출국, 중국 남방항공을 타고 우한을 경유해 16일 호찌민 탄손넛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호찌민 시내 3군에 있는 찌에우 헌 호텔에서 투숙한 그는 26일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심한 기침을 호소했으나 고열, 근육통 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형적인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환자가 바이러스 치료 시설을 갖춘 호찌민 병원으로 이송된 건 1월31일이다. 경유를 위해 우한에 단지 2시간 머물렀음에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데다, 뚜렷한 증상없이 입국한 환자의 사례가 나오자 베트남 정부는 하늘길 통제, 휴교령 같은 단호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가 일련의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하고는 있지만, 확산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7번째 환자만해도 증상이 발견되기 전까진 호찌민 시내를 활보했다. 현재까지 그의 이동 동선에 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베트남 정부는 7번째 환자가 머물렀던 호텔 직원들과 일부 투숙객에 대해 2월15일까지 격리조치를 내렸을 뿐이다.상황이 심각해지면서 하노이, 호찌민 등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베트남 발표에 따르면 확진자가 나온 곳은 북부의 빈푹성과 나짱이 있는 중남부의 카인호아성, 중부의 타인호아성 등 세 곳이다. 7번째 환자로 호찌민시가 추가됐다. 하노이는 아직 안전 지대로 분류되고는 있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빈푹성만해도 하노이에서 차로 약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불과하다. 게다가 하노이에서 고속도로로 40분쯤이면 닿는 박닌성엔 중국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박닌성은 삼성전자의 대형 공장이 있는 곳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부터 설 연휴를 끝내고 정상 조업을 시작했다.
한인 사회에서 확진자가 나올 경우 충격의 강도는 예상조차 하기 어렵다. 베트남 한인은 대략 2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치료할 병원이 마땅치 않다. 베트남 정부는 한인을 포함해 외국인들이 자신 신고하고 입원할 수 있도록 전국에 22개 지정 병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들 병원이 음압병실 등 바이러스 치료를 위한 시설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베트남 한인 A씨는 “혹여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열악한 베트남 국립병원에 입원하려는 한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간판을 내 건 병원들도 대부분 피부과, 치과 정도여서 바이러스 환자를 수용하기란 불가능하다.
만일의 경우 한국을 경유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베트남 유입 사례가 확인된다면,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중국과의 하늘길을 전면 통제하지는 않고 있다. 사업, 관광 등의 이유로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이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바이러스 경유지가 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한국~베트남 항공편 숫자는 한국~중국 항공편의 절반에 달할 정도다. 이와 관련해 한국, 베트남 정부 모두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베트남 한인은 “연초에 약속했던 각종 모임들을 대부분 취소하고 꼭 만나야할 사람만 만나고 있다”며 “우려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