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 업체들이 상반기에 철강재 가격 인상에 나설 태세다.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은 지난해 30% 이상 급등했지만 자동차·조선 회사에 공급하는 제품 값은 올리지 못해 철강 업체들은 냉가슴을 앓아왔다. 작년 4분기 ‘어닝쇼크(실적 충격)’수준의 실적을 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더 이상 가격 인상을 미룰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객사와 가격협상 개시
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철강 가격 인상을 추진할 계획이다. 철강회사들은 고객사와 반기별로 협상을 통해 제품 공급가격을 결정한다.
김영중 포스코 마케팅전략실장은 지난달 31일 실적 발표 후 이어진 콘퍼런스콜에서 “일본 미국 등 세계적인 철강 가격 인상 추세에 맞춰 국내에서도 가격 인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도 “이달 협상에서 자동차 강판 가격을 최소 t당 3만원 인상할 것”이라고 했다. 철강사들이 가격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급격한 실적 악화 때문이다. 포스코는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5576억원에 그쳤다고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전년 같은 기간(1조2715억원) 대비 반토막(-56%) 수준이다. 10분기 만에 ‘영업이익 1조원’ 행진에 급제동이 걸렸고 연간기준 영업이익도 4년 만에 감소했다.
현대제철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작년 4분기 1479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현대제철의 분기 적자는 전신인 인천제철 시절을 포함해 1990년 이후 처음이다.
조선사 “가격 인상 이르다”
철광석 가격은 작년 7월 t당 120달러 선을 넘어서며 5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작년 8월 이후 조금 하락했지만 여전히 t당 90달러 선으로 2018년 말 대비 30%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산 열연강판 가격은 작년 2분기 t당 513달러에서 3분기 482달러, 4분기 452달러로 계속 하락했다. 철강사들은 원재료값 상승분을 반영해 선박용 후판과 자동차용 강판 가격을 최소 t당 3만~5만원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회사들과의 협상은 난항이 예상된다. 배를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후판 가격은 2016년 이후 t당 60만~70만원 선에서 동결됐다. 최고점을 찍었던 2008년(110만원 선)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철강사들은 2016년부터 수주 가뭄에 시달린 조선사들의 사정을 감안해 가격 인상을 미뤄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 증가로 조선업황이 바닥을 찍은 만큼 이제는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게 철강사들의 요구다.
반면 조선사들은 인상안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수주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선가가 오르지 않아 아직은 실적 부담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작년 4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배를 수주해 진수하고 대금을 받기까지 2~3년이 걸린다”며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초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등 조선사들의 경영상황도 여전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회사와의 가격 협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의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있어 자동차산업의 전망도 밝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강판 가격은 2017년 말 이후 동결됐다.
우한 폐렴으로 철강수요 위축 우려도
철강사들의 실적 회복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철강 가격 인상에 성공한다 해도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중국 철강사들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있어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영향으로 철강 수출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포스코는 매년 중국에 차량용 강판 등 300만t 규모의 철강재를 수출하고 있다. 폭스바겐, GM 등 주요 고객사가 우한 폐렴으로 중국 공장 가동 중단을 연장하면서 철강재 수요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