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줄도산 위기" 국민청원 낸 여행업계

입력 2020-02-02 17:41
수정 2020-02-03 00:13
“지난주에만 행사 두 건이 취소됐습니다. 하소연할 곳도 없어 막막합니다.”

중견 전시기획사 K대표는 대화 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의 직격탄이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업계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다중시설, 단체행사 등은 무조건 기피하는 공포심이 확산하면서 수많은 행사가 도미노 취소 사태를 빚고 있다. “회사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탄식이 숨이 끊어질 듯 깊었다.

지역축제부터 전시회,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마라톤 대회까지 그가 준비하다가 취소했거나 연기한 행사만 수십 개다. 급속도로 퍼지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응급조치다.

문제는 그 그늘이다. 행사 취소 사유가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인 탓에 보상은커녕 최소 경비도 건지기 힘들다. 발주처인 ‘갑’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거래를 끊겠다는 작심을 하지 않고서는 그렇다.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금의 절반이라도 달라고 하면 “우리도 바이러스의 피해자”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렇게 본 피해만 수십억원인 K대표는 속만 끓이고 있다. 이런 업체들이 전국에 수천 개다. 줄도산이 불 보듯 뻔하다.

여행업계는 더 심각하다. ‘보이콧 재팬’이 좀 가라앉나 싶더니 홍콩 시위 사태가 터졌고, 호주엔 최악의 산불이 났다. 여기에 우한 폐렴까지 덮쳤다. 모든 악재가 불과 6개월 사이에 터졌다. 위약금을 둘러싼 갈등의 후폭풍이 이제부터 몰아닥칠 기세다. 중국 여행 취소 위약금을 면제했지만 “왜 똑같은 우한 폐렴 때문인데 다른 지역 여행은 안 해주냐”는 불만이 쏟아진다. 이런 뒤처리 비용까지 떠안아야 하는 업계에선 ‘백척간두의 위기’라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참다못한 기업들은 급기야 청와대 게시판에 “업계가 모두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그러나 어디서도 반향은 들려오지 않는다.

전염성 질병으로 인한 업계 피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부터 신종플루,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그리고 우한 폐렴까지 2000년대 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다. 5년에 한 번꼴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피해 기업에 대한 보상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은 찾아볼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영자금 지원이라는 대응책이 있지만 ‘실효성 없는 생색 내기용’이란 평가를 받은 지 오래다. 결국 상환해야 할 융자금인 데다 담보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감당할 기본 책임은 기업에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업계조차 불가항력인 천재지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현실적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