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한전에선 ‘신안 앞바다 선장’도 정규직?

입력 2020-01-31 09:54
수정 2020-01-31 10:06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직책이 ‘선장’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1990년대 후반에 입사한 박모 씨로, 전남 신안지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직급은 과장입니다. 해운회사나 운송회사가 아닌 전력회사에서 선장을 두고 있는 곳으로는 여기가 유일할 것 같습니다.

전남 신안 앞바다엔 섬이 무척 많습니다. 섬 갯수가 1000개를 넘지요. 박 과장은 도서 지역의 전력 설비를 점검하는 한전 직원들을 실어 나르는 게 주 업무입니다. 국내 유일한 전기 도매업체인 한전은 전력 송·배전과 함께 설비 점검도 하고 있습니다. 섬마을에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죠. 한전 관계자는 “선장뿐만 아니라 연안 운송선도 한전 소유”라며 “다른 직원이 없이 선장 겸 선원을 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전 내엔 다른 이색적인 배경을 가진 직원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충북 진천지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이모씨입니다. H증권 애널리스트 출신인 그는 나이도 50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증권사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는데도 안정적인 공기업을 택했습니다. 한전 관계자는 “입사 때 나이 제한이 없어지면서 다양한 경력직이 지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직원수(정규직)가 2만2000여명에 달하는 한전의 고민은 정작 다른 데 있습니다. 공기업 대표로서 국정 과제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모범을 보여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죠.

현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만 해도 한전의 비정규적인 8500여 명에 달했습니다. 대부분 용역회사 소속이었죠. 한전은 작년부터 한전FMS, 한전MCS, 한전CSC 등 자회사를 잇따라 설립해 용역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왔습니다.

핵심은 한전 검침원 5200여 명이었습니다. 정부 계획에 따라 스마트 전력 계량기(AMI) 보급을 확대하고 있는데, 이 경우 검침원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원격으로 전력 계측이 가능한 상황에서 검침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전기 사용량을 체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전이 올해 전국 2250만 가구에 AMI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 심각한 재정난 때문에 보류됐다는 겁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검침원이 머지 않은 시기에 사라질 직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단 정규직으로 전환한 뒤 다른 일이라도 맡겨야 한다는 게 정부 가이드라인”이라며 “하이패스 확대로 고속도로의 유인 톨게이트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한국도로공사가 요금 수납원들을 재고용해 다른 맡길 일을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공기업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건 2017년 7월 20일입니다. 당시 공기업 전체의 비정규직은 총 20만5000명이었지요. 현재 정규직 전환 비율은 한전을 포함해 90% 안팎에 달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