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야드 빨랫줄 장타에 내비게이션 퍼트까지….’
‘탱크’ 최경주(50)가 아들뻘 선수들 사이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나이 쉰이면 정확성밖에 믿을 게 없다. 겨우내 원하는 곳에 공을 떨구는 훈련을 했는데, 비거리까지 늘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최경주는 31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 스코츠데일의 TPC스코츠데일(파71·7261야드)에서 열린 PGA투어 웨이스트매니지먼트피닉스오픈 1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잡아내 5타를 줄였다. 5언더파 66타 공동 8위. ‘한국 골프 간판’으로 불리는 임성재(22·5언더파)와 같은 순위다. 임성재는 최경주의 맏아들보다 한 살 어리다.
‘아들뻘’ 선수들 틈에서 정확도로 승부
시즌 전 약 19개 정규대회 출전을 선언한 최경주는 실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보여줬다. 시니어투어보다 정규투어에 욕심이 난다던 그였다. 올해 그는 시니어투어 출전 자격을 주는 만 쉰이 됐다. 최경주는 “동계 훈련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한동안 구사하던 드로 샷을 포기하고 내 전성기에 잘 치던 페이드 샷 위주로 경기했다”고 말했다. 또 “2라운드를 잘 치러서 여유 있게 커트를 통과하는 게 당면한 목표”라며 “커트를 통과하면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서 톱10 진입을 노릴 것”이라고 했다.
최경주는 ‘파워 골프’를 앞세운 ‘젊은피’ 사이에서 정확도를 앞세운 완숙미를 뽐냈다. 이날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284야드로 123위에 그쳤으나 페어웨이는 한 차례만 놓치며 적중률에선 전체 공동 1위(92.85%)에 올랐다. 하지만 1번홀(파4)에선 310야드를 보내며 필요할 땐 응축한 힘을 폭발했다. 6번홀(파4)에서도 티샷으로 305야드를 날렸다.
또 다른 무기는 퍼트였다. 최경주는 1라운드에서 상대 평가로 이뤄지는 퍼팅 이득 타수(strokes gained putting)에서 3.651타로 전체 5위에 올랐다. 그린적중 시 퍼트 수는 1.643타로 공동 21위다. 최경주는 “샷도 좋았지만, 퍼트가 특히 잘 됐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위기를 파로 막은 8번홀(파4)에선 최경주의 노련함이 빛났다. 최경주는 티샷이 벙커에 빠진 뒤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약 30m 짧게 떨어뜨렸으나 세 번째 샷을 홀 약 2m 옆에 붙여 파로 끝냈다. 파5 13번홀에선 세 번째 샷이 한참 짧았으나 네 번째 샷을 홀 옆 약 1m 지점에 떨어뜨려 쉽게 파로 막았다. 통산 8승을 기록 중인 최경주의 마지막 우승은 2011년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다.
안병훈, 임성재, 강성훈도 선두권
한국 선수들이 선두경쟁그룹에 네 명이나 낀 게 이례적이다. 임성재는 이글 1개(버디 4개, 보기 1개)를 앞세워 5언더파로 대회를 시작했다. 15번홀(파5)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326야드나 날리는 ‘장타쇼’를 펼친 뒤 가뿐히 2온까지 성공시켜 약 4m짜리 이글을 잡아냈다. 강성훈(32)도 4언더파 67타를 쳐 공동 13위에 올라 2라운드에서 톱10 진입을 노린다.
안병훈(28)은 한국 선수 중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잡아내 6언더파 65타 공동 4위에 자리했다. 안병훈은 평균 319야드의 티샷을 치고도 페어웨이 적중률이 71.43%(10/14)에 달해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다.
안병훈이 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온 만큼 PGA투어 첫 승에 대한 기대도 높다. 그는 출전 첫 해인 2017년 3라운드까지 선두로 우승 경쟁을 펼치다가 마지막날 삐끗하며 6위를 기록했다. 이후 2년 동안 공동 23위, 공동 20위를 기록해 짭짤한 상금을 챙겼다.
17번홀(파4)까지 4오버파로 부진한 노승열(29)은 이날 일몰로 참가자 중 유일하게 경기를 마치지 못했다.
선두는 버디 10개를 뽑아내 10언더파 61타를 친 윈덤 클라크(26·미국)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