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던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29일 본점으로 첫 출근을 한다. 임기 시작 27일 만이다. 국내 금융권 역사상 최장 기록을 세운 노조의 출근 저지 집회는 마무리됐다. 노사는 앞으로 행장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희망퇴직 제도에 힘쓰기로 합의했다. 일각에서는 윤 행장이 노조추천이사제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노조의 경영개입이 과도해질 우려가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 연휴 기간 내내 물밑 협상
기업은행은 29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윤 행장의 취임식을 연다고 28일 발표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도 이날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금융위원회 측과 지속적인 면담과 대화를 이어왔고 은성수 금융위원장,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의 공식적인 유감 표명과 행장 선임에 관한 제도 개선 추진을 약속받았다”고 투쟁 철회 의사를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기업은행장 임명 과정에서 소통과 협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민주당을 대표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합의문에는 노조의 그간 요구가 모두 담겼다. 합의안에는 △희망퇴직 문제 조기 해결(시행 재개) △노조추천이사제 적극 추진 △임원 선임절차 투명성 및 공정성 개선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 시 노조가 반대할 경우 철회 △인병 휴직(휴가) 기간 확대 적극 협의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중 노조추천이사제와 희망퇴직 문제는 모든 국책은행 노조에서 요구하던 사안이었다. 청와대가 노조 반발이 예상됐음에도 임명을 강행하고, 그 대가로 노조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사 합의 현실화할까
노조의 윤 행장에 대한 출근 저지 집회는 금융권 최장 기록으로 남았다. 그는 지난 2일 신임 행장으로 임명돼 3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노조는 외부 출신인 윤 행장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2010년부터 10년째 내부 출신이 행장을 맡아왔고 이 기간 실적이 우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윤 행장은 임명 후 세 차례 출근을 시도했으나 매번 노조 반발에 발걸음을 돌렸다.
향후 관건은 노사 합의안이 실행될지 여부다. 희망퇴직·노조추천이사제 등은 국책 은행 노조 대부분이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제도다. 기업은행을 비롯해 모든 국책은행은 2015년 이후 희망퇴직을 중단했다. 감사원이 2014년 산업은행에 대해 퇴직금 지급 규모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게 계기였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모든 국책은행에 걸려 있는 이슈여서 정부 및 유관기관과의 협의가 관건”이라며 “윤 행장이 관료 출신이기 때문에 대화가 수월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희망퇴직이 도입되더라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기획재정부의 인건비 상한 규정에 따르면 국책은행은 임금피크제 기간(5년) 급여의 45%만 희망퇴직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 시중은행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받게 되는 만큼 희망퇴직을 선택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행장 선임 과정 개선과 노조추천이사제 등도 모든 국책은행 노조에서 주장했지만 바뀌지 않고 있는 내용”이라며 “노사 합의안은 선언적인 역할만 할 뿐 시행 여부는 전적으로 정부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정소람/송영찬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