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민심이 심상치 않다. 현장의 경제·민생 경기는 냉랭하기 그지없는 데다 ‘우한 폐렴’까지 겹쳐 불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먹고살기 힘들다” “설 대목경기가 다 죽었다”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손주와 조카들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어려웠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청와대의 국정 독주, 부동산 폭등으로 상처받은 여론은 설 연휴를 더 흉흉하게 했다.
그런데도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왔다는 정치권의 설 민심 해석은 문자 그대로 아전인수(我田引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은 “국민은 도 넘은 국정 발목잡기를 하고 국회를 폭력으로 유린한 극한 정쟁을 보인 자유한국당을 총선에서 단호히 심판해야 한다는 마음을 단단히 굳혀가고 있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반성은커녕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와서 ‘민심’이라고 우기니 실망스럽다. 범여권인 정의당조차 “(국민은) 한목소리로 먹고살기 너무 힘들고 경기가 안 좋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하는데, 날개 없이 추락하는 민생과 어깨가 축 처진 국민이 민주당의 눈에만 안 보이는 것인지 묻고 싶다.
심상찮은 민심 동향을 의식한 듯,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제 그만 싸우고 일 좀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겠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그동안 정쟁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돌이켜보면 적절치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년 내내 경제·민생은 뒷전인 채 선거법 개정이니, 검찰개혁이니 하며 극한 대치로 몰고간 책임은 보수야당보다 ‘4+1’ 범여권에 있지 않은가. 이 원내대표는 2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민생을 챙기자고 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의 심재철 원내대표는 “‘더 세게 싸워 달라, 4월에 반드시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말씀이 많았다”고 했지만, 정부 실정(失政)을 부각시킨 것 말고, ‘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파적 이해에 몰입해 싸움만 하지말고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데 힘써 달라는 국민의 주문은 야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며 정권 견제세력으로서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게 제1 야당의 과제일 것이다.
총선을 약 80일 앞두고 여야 모두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듯하다. 벌써부터 각 정당과 예비후보들이 쏟아내는 ‘묻지마 공약’을 보면 분양가 1억원에 20평 아파트 공급, 전 국민에게 월 45만원 기본소득 지급, 비만 관리하면 상품권 지급 등 황당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포퓰리즘에 여야가 따로 없다지만, 민주당 소속 예비후보들이 내건 공약 이행에만도 300조원이 소요될 판이다. 국회가 깔아뭉개고 있는 ‘선거공약 사전검증제’를 당장 도입해 폭주하는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정치가 바로서려면 유권자가 정신 바짝 차리는 길밖에 없다. 민심을 멋대로 해석하고, 나라야 어찌되건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정상배를 걸러내는 것이 선진사회 시민의 책무다. 이번만큼은 젊은 세대와 나라의 미래를 위한 총선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