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석의 데스크 시각] 악마는 수학을 싫어한다

입력 2020-02-09 17:39
수정 2020-02-10 00:19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을 의문. “수학은 도대체 왜 배우는 거야?” 머릿속엔 불만 섞인 물음표가 뱅뱅 돌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는다. 교실 한편에 놓인 회초리를 감당하기엔 엉덩이가 너무 나약하다.

《틀리지 않는 법》이라는 책의 저자는 수학을 축구 선수들의 기초 훈련에 비유한다. 낮은 허들을 반복적으로 뛰어넘고, 도로 표지용 고깔 사이를 지그재그로 누비는 훈련 등이 수학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실전에선 어떤 선수도 허들과 고깔을 마주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훈련을 견뎌내지 못하면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 수학은 합리적인 사고를 이끌어내는 기초 훈련이다. 머릿속 근육을 키우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이렇게 키운 근육은 올바른 선택의 버팀목이 된다.

이념과 감정만 앞서는 현실

정부가 작년 말 19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중심은 금융권 대출 규제였다. 신문에 Q&A 기사를 작성할 때마다 쓰는 기자도, 보는 독자도 매번 헷갈린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은 숨바꼭질을 했다. 스무 번에 가까운 대책은 그만큼 ‘단견’이었다는 방증이다.

모든 재화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른다. 흔해지면 싸진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급 확대라는 카드엔 여전히 인색하다.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보다 강남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려는 정치적 표 계산이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목표보다 앞서 있는 건 아닐까.

부동산 대책만 그런 건 아니다. 정부 정책 전반이 이런 식이다. 합리와 이성은 사라지고, 이념과 감정이 우선이다. 탈원전정책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생경한 이름의 정책도, 각종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외교정책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한쪽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한쪽에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반대 구호부터 외친다. 갈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국가의 미래는 산속을 헤맨다.

부분 수정으로 해결될 수준은 넘었다. 전체 판을 번쩍 들어 오염물질을 탈탈 털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판이 바뀌어야 하고, 그러려면 선거를 잘 치러야 한다. 유권자들이 ‘집 나간’ 이성과 합리를 찾아나서야 하는 이유다.

선거 준비물은 이성과 합리

이성적인 사고를 지탱하려면 힘이 든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악마의 목소리를 끈질기게 떨쳐내야 한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인데 무슨 근거가 있겠지?’ ‘일단 난 저 인간이 하는 소리는 듣기 싫어!’ ‘그래도 같은 고향 사람인데…’ 등등.

한국경제신문이 작년 8월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게재한 ‘수학이 세상을 바꾼다’ 시리즈가 지난달 ‘씨티 대한민국 언론인상’ 대상에 선정됐다. 인공지능(AI) 혁명을 위한 수학 교육의 중요성을 상세히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학의 효용은 4차 산업혁명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우리 삶의 전반을 바꾸는 데 수학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수상은 이런 사회적 필요성을 일깨우는 자그마한 경고등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한 금융사 대표가 전해준 농담 한마디. “중남미에서 ‘혁명’이 한창일 때 반군은 정부를 전복하고 난 다음 수학자부터 때려잡았대요. 자꾸 ‘왜?’라고 의문을 다는 습관 때문에….” 바야흐로 선거 시즌이다. 국민 모두가 머릿속 한편에 의문부호를 달아야 한다. 그래야 근거 없는 이념을 떨쳐내고, 들끓는 감정을 삭일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적어도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