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앤틱가구거리는 한산했다. 보광로·녹사평대로 26길을 따라 형성된 900m 남짓한 이 거리에는 80여 개의 앤틱·빈티지 가구점이 모여 있다. 오가는 사람도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행인들은 창문 너머로 구경만 하고 지나쳤다. 몇몇 가구점에는 ‘임대문의’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고, 중개업소에 매물로 나온 가구점도 두세 곳 있었다. 한 가구점주는 “주말에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실제로 사는 경우는 드물다”며 “저렴한 소품 위주로 ‘인싸템(주류들이 선호하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앤틱가구거리도 위기
광역 이태원 상권에서 경리단길에 이어 앤틱가구거리도 위기를 맞고 있다. 인근 한남뉴타운 개발 여파로 고가구점 자리에 중개업소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고유의 색깔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이 상권은 1960년대 미군들이 본국에서 가져온 가구를 팔면서 형성됐다. 국내 최대 앤틱가구 특화상권으로 떠오르면서 2015년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인접한 한남뉴타운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뉴타운 분양’이란 안내장을 창문에 붙인 중개업소가 10개가량 들어섰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앤틱가구거리에서 최근 2년 새 중개업소로 바뀐 가구점이 5개 정도다. 15년째 이곳에서 앤틱가구점을 운영해온 A씨는 “장사가 어려워 (가구점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원조라는 자부심 하나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며 “고가구를 찾는 사람이 줄어드는 대신 재개발에 관심을 보이는 수요가 늘어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태원앤틱가구협회에 따르면 이곳 가구점 80여 곳 중 절반 정도가 20년 이상 된 가게다. 가장 오래된 가게 중 하나인 ‘골든’은 1970년대부터 운영해왔다. 이태원동 주민 김모씨(68)는 “외국 물건이 귀하던 1970~1980년대에는 이곳이 선망의 장소였다”며 “주요 고객이 인근에 거주하는 해외 공관 근무자, 자산가들이어서 일반인은 접근조차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또 다른 점주는 “과거에 비해 가구 수입이 쉬워지고 유행도 빠르게 바뀌면서 찾는 사람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고 전했다.
한남뉴타운 개발이 변수
인근 이태원 경리단길 등이 한때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앤틱가구거리의 임대료도 따라 상승했다. 김한구 이태원앤틱가구협회 회장은 “4~5년 전 경리단길이 한창 뜰 때 이곳 임차료도 따라서 50% 넘게 올랐다”며 “최근 2년간은 경기가 좋지 않아 상승세가 멈췄지만 이미 너무 많이 올라 수십 년 된 터줏대감들도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보광동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앤틱가구거리 월세(전용면적 33㎡ 기준)는 보증금 2000만~3000만원에 월세 140만~160만원 선이다. 권리금은 1500만~2000만원 정도다. 보광동 H공인 관계자는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 가치가 바로 떨어진다”며 “임대인으로서는 경기가 어려워도 임대료를 도로 내리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중개업소들은 앤틱가구거리가 고유의 색깔을 잃어도 매매가가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한남뉴타운 재개발과 용산공원 조성이 추진되면서 부동산 가격도 함께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태원동 H공인 관계자는 “한남뉴타운은 ‘황제 뉴타운’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며 “앤틱가구거리는 한남뉴타운과 거의 붙어 있어 임차업종 구성이 바뀔 순 있지만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