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호 마이쏭 대표 “시대가 변해도 결국은 맛으로 승부한다”

입력 2020-01-23 14:37
수정 2020-01-23 18:42
2004년 단돈 700만원으로 레스토랑 창업해 ‘맛’과 ‘정체성’ 잊지 않아
이탈리안 가정식 ‘그랑시엘’과 뉴욕 스타일 표방 ‘마이쏭’ 청담맛집으로 꼽혀


박근호 대표는 요식업계의 이단아라고 불릴 정도로 남다른 길을 걸어왔다. 2004년 단돈 700만원으로 국내 최초 원테이블 레스토랑을 가정집 차고지에서 열었던 박 대표는 이때의 성공을 바탕으로 압구정 한복판에 두 곳의 음식점을 더 차렸다. 이탈리안 가정식 ‘그랑시엘’과 뉴욕 스타일을 표방한 ‘마이쏭’은 오픈 후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서울의 대표적인 이탈리안·브런치 음식점으로 불리며 청담맛집으로 꼽힌다.

시대가 흐르며 요식업 사업자들의 비즈니스 방식도 변했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바이럴·SNS·TV 등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고객을 유인하는 게 주가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정작 가장 중요한 ‘맛’을 놓치는 곳들도 적지 않다. 반면 박 대표의 요식업 비즈니스는 여전히 ‘맛’과 ‘정체성’ 두 가지 포인트를 잊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음식점 폐업이 이어지는 요즘 시대에 지금까지 청담맛집으로 꼽히며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박 대표 부부는 2010년 F&B 사업체 씨엘쏭, 2014년 토탈 주방용품 브랜드 ‘쏭셰프’를 창업한 데 이어 2015년부터는 가정간편식을 만드는 쿠킹박스 브랜드 ‘프렙(prep)’을 운영 중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유행을 좇기보단 트렌드를 이끈다는 생각으로 넓은 시각에서 다양한 사업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절대 강자가 없는 간편식 시장에서 원칙을 가지고 경쟁해 우뚝 서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다음은 박근호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최근 네이버 같은 플랫폼들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을 활용한 마케팅 방법,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즐겨 사용한다. 박근호 대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들도 연예인들 단골인 집, 청담맛집으로 유명한데, 그에 편승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것인가.

A. 아니다. 마케팅 목적의 비지니스 모델 도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같은 셀럽들이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게나 기업들이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하고 그 바탕에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 키포인트라 생각한다.

말 그대로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아무리 트렌디한 마케팅에 비용이나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Q. 음식점은 맛이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나.

A. 그렇다. 셀럽이라는 사람들도, 아무리 멋지고 인기가 높다는 곳을 찾아다녀도 결국에 맛이 있어야 한다. 음식 자체로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야만 자연스럽게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입소문이 퍼지게 되는 거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셀럽이 자신의 SNS에 맛집 포스팅하게 되면 그때부터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자신이 찾은 맛집이어야 자랑하고 싶어진다는 것이고, 그것이 마케팅의 기반이다. ‘맛있다’는 사실에 기반한 마케팅, 인플루언서 마케팅이야말로 진짜 파급효과다.

Q. 강남구 청담동 금싸라기 땅, 목 좋은 곳에 레스토랑이 두 개나 있다. 있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 고급 레스토랑을 개업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을법한데.

A. 그랬으면 얼마나 편했겠나. 2004년 레스토랑 사업 시작 때 이송희 대표와 함께 모은 자본금 700만원으로 시작했다. 사실, 내가 자본금을 가지고 오다 중간에 300만원짜리 카메라를 덜컥 사는 바람에 각자 500만원씩, 1000만원이었던 자본금이 7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어떤 금수저가 700만원으로 창업을 하겠나.

Q. 십몇년 전이라고 해도 자본금 700만원은 조금 납득하기 힘들다.

A. 맞다. 그래서 700만원에 신용보증 사업자창업대출을 얹어 가게를 인수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권리금을 벌어서 갚아나갈 수 있었다. 그 때가 내가 28살, 이송희 대표가 26살이었다. 젊은 혈기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단순함이 성공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 젊음이 있었다.

Q. 젊음이 재산이었다는 이야기는 너무 고루한 스토리라고 여겨진다

A. 전혀 그렇지 않다. 싸고 좋은 재료를 사려고 새벽마다 가락시장을 직접 다니며 사장님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처음엔 굉장히 무시하는 시선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 사장님들이 성향상 매일 얼굴을 들이미는 우리들에게 마음을 열어주셨다. 나중에는 정말 잘되길 바래주는 정이 넘치는 조력자이자 후원자가 돼줬다. 초창기 1년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가장 큰 뿌리가 됐고, 나중에 핫플레스 청담 입성을 노리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Q. 시선을 좀 바꿔보자. 박 대표의 레스토랑이 우리나라 원테이블 레스토랑의 시초격이라는 얘기가 있다. 무슨 얘기인가.

A. 2004년 개업 당시 테이블이 오직 하나 뿐인 레스토랑은 없었다. 문을 연 레스트랑이 가정집 차고지였던 자리였기 때문에 가게 오픈 계획시에 고민 많이 했다. 그러다가 분식집 같은 느낌이 날 바에는 아예 테이블이 하나여도 확실한 서비스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이 하나이기 때문에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100% 예약제 프라이빗 레스토랑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때 가게를 통째로 빌리는 컨셉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Q. 한달에 30일을 열어도 점심 저녁 60팀 밖에 못 받는 거 아닌가? 어떻게 청담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게 된건가.

A. 오픈 이후 또 운이 좋게 유별난 것만 찾아다니는 VJ특공대라는 TV프로그램이 생겼고 프로그램에 아주 적합한 소재가 돼 방송을 타게 됐다. 그 뒤부터 비슷한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는 무조건 우리 레스토랑이 소개되는 거다. 입소문은 입소문을 타게 됐고 다양한 커플 스토리들이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기억에 남는 커플이라면 약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남친, 여친이던 사람들이 저희 레스토랑에서 프로포즈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그 분들은 기념일마다 레스토랑을 찾았고, 자신들의 아기를 안고 오기도 했다. 사실 저희 레스토랑이 사람냄새 나는, 사랑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장소가 돼 행복하다.

Q. 부부가 두 개의 레스토랑을 각자 경영하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전공이 음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A. 관련 없기도 하고 관련 있기도 하다. 나는 사진을 전공했다. 공동창업자인 이송희 대표는 경영을 전공한 후에 푸드 스타일링 업에 종사했다. 한명은 레스토랑 촬영차 수많은 음식과 핫플레이스를 접하게 됐고, 한명은 푸드 스타일링 업무를 하면서 식자재에 대한 연구를 했다. 뼈 속까지 음식과 연관됐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너무 관련이 많은 전문가들 아닌가.

Q. 레스토랑 사업이 결혼이랑 연관된 부분이 있다고 들었다. 그 얘기는 무슨 얘기인가.

A. 그렇다. 우리의 사업은 박근호, 이송희라는 두 사람이 만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푸드스타일링을 하던 이송희가 모 잡지사의 테이블 세팅전에 참가하게 돼 제출할 사진이 필요했고, 제가 그 사진을 찍어주다 둘이 눈맞아 교제하게 됐다. 교제 시작 한달도 안돼 가게를 덜컥 오픈한 것이다.

그 가게가 바로 국내 최초 원테이블 레스토랑인 ‘인뉴욕(in NewYork)’이었다. 어떤 나라의 음식이든 북미식이라면 다 통할 거라 생각해서 간판을 달았다. 꼬박 1년 뒤, 그러니까 2005년 ‘그랑씨엘(Grandciel)’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그리고 2009년 아메리칸 브런치 레스토랑 ‘마이쏭(my ssong)’의 문을 열었다.

Q. 마이쏭은 무슨 뜻인가. 베트남어 인가.

A. 사실 2008년 시장조사차 둘이 뉴욕을 여행한 적이 있다. 원래는 미국 뉴욕 복판에서 프로포즈하려 했지만 잘 안됐다. 그래서 이송희 대표를 찍은 사진으로 프로포즈용 사진앨범을 제작했고, 그 앨범의 제목이 마이쏭(my ssong)이었다. 자연스레 레스토랑 간판이 됐고, 고객들 입소문으로 마이쏭은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위해 문을 연 로맨틱한 레스토랑이 됐다. 레스토랑을 중심한 스토리텔링이 생긴 것이다.


Q. 그럼 사업적인 얘기를 좀 물어보자. 그랑씨엘과 마이쏭 레스토랑은 어떻게 차별화했다는 것인가.

A. 앞서서 얘기했지만, 첫째는 맛이다. 우리는 레스토랑 메뉴들 중에 비슷한 구석이 있는 음식은 안 만든다. 음식마다의 특색 있고 임팩트를 전달하려 노력했다. 하나의 메뉴로 많은 맛을 전달하지 않고 단 한 가지의 맛이라도 확실하게 음미하도록 했다.

둘째는 문화이다. 그랑씨엘에서 패션쇼를 열면서 음식을 즐겼고, 그저 술만 마시는 파티가 아닌 사교의 장으로 탈바꿈 했다. 또 낮술파티(NotSul Party)를 통해 디자이너와 모델에이전시, 주류회사 같은 각자 재능을 서로 공유하고 교류하는 장을 만들어냈다.

Q. 식음료사업에서 박근호 대표의 철학은 무엇인가?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

A. 우선, 레스토랑 측면에서는 현재의 맛에 안주하지 않겠다. 회사 차원에서는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간편식 분야에 방점을 찍고 싶다. 중요한 것은 트렌드를 쫓기보다 고유의 영역을 만들어 가면서 일하고 싶다.

그래서 밀키트(Meal Kit) 제조분야 사업도 시장보다 일찍 시작했던 것 같다. 가정편의식이라 많이 알려진 사업에 ‘프렙(prep)’이라는 브랜드를 창업한 지도 벌써 4년차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도전하는 분야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곰같이 버텨내고 우뚝 서고 싶다. 2004년의 젊은 혈기를 상기하면서 도전을 서슴지 않는 일꾼이고 싶다.

이준현 한경닷컴 연예·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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