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탈원전 탈석탄 '사면초가' 두산중공업.. 4월에 5억弗 채권 상환해야

입력 2020-01-23 14:25
수정 2020-01-23 15:36
≪이 기사는 01월15일(03:3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자금 사정이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다. 그간 자회사 두산건설의 어려운 사정을 돌보느라 허리가 휜 데다 본업인 석탄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 분야 매출과 영업이익도 부진하다. 이런 가운데 오는 4월 대규모 외화 공모사채의 만기도 돌아온다. 금융권에서는 두산중공업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하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 공시 등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수주 잔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15년 8조4000억원에 달했던 두산중공업의 신규 수주 물량은 작년 1~9월 1조1800억원에 그쳤다. 2015~2017년 17조원대였던 수주 잔고는 2018년 15조7000억원 수준으로 줄었고, 작년 9월말엔 13조9000억원까지 내려앉었다.

두산중공업의 주요 매출원은 원자력발전 및 화력발전 분야에서 나오는데, 현 정부가 탈(脫) 원전을 선언하고 신규 원전 4기 도입계획을 백지화하고, 건설 중인 원전 2기도 중단시킨 데다 전 세계적인 탈 석탄 기조까지 겹치면서 수주 물량이 감소한 데 따른 결과다. 두산중공업은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기존 사업영역의 매출 부진을 만회할 정도엔 이르지 못했다.

수익 구조도 덩달아 나빠질 수 밖에 없다. 2015년 5조원대였던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8년 4조1000억원 선을 기록했고, 작년 1~9월에는 2조6000억원에 머물렀다. 한해 2000억원이 넘던 영업이익은 2018년 18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고, 작년엔 3분기까지 628억원을 버는 데 그쳤다. 4분기 결산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지만 작년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작년 말 100% 자회사로 전환한 두산건설은 여전히 두산중공업의 어깨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경기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등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로 인해 두산건설은 2018년에 5500억원에 달하는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두산중공업은 전환상환우선주(RCPS) 인수 및 유상증자 참여 등을 통해 두산건설에 1조원 이상을 지원하고, 두산건설도 자산을 매각하는 등 여러 자구책을 시행했지만 회사를 살리는 데는 부족했다. 결국 두산건설 상장폐지가 예상되자 두산중공업은 작년 말 두산건설을 100% 자회사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재무 지표에도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작년 9월말 기준 부채비율은 180%대로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1년 이내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차입금의 비중이 85%로 상당히 높아졌다. 매출채권을 담보로 유동화를 하는 사례도 늘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오는 4월27일 만기가 돌아오는 외화 공모사채 5억달러(약 6000억원)를 상환하는 일이다. 2015년에 발행된 이 공모사채는 수출입은행이 보증을 선 것으로 연 2.13% 금리에 발행됐다. 금융권에서는 두산중공업의 재무상황을 고려할 때 다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전체 매출액 대비 미청구공사 금액 비중이 크게 높아지는 등 전체적으로 '체력'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경우 금리나 여러 조건이 나빠지는 것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등급도 위태위태하다. 한국신용평가는 작년 5월 두산중공업의 신용등급을 'BBB+(하향검토)'에서 'BBB(부정적)'으로 떨어뜨렸다. 당시 한신평은 "두산중공업의 차입금 중 일부는 BBB 등급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곧바로 해당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조건에 묶여 있다. 한 단계라도 등급이 더 떨어지면 이로 인해 두산중공업의 재무부담이 한층 가중되는 구조다.

금융권에서는 두산그룹의 '버티기'가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와 이번에도 특유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두산그룹이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수년 전부터 시장에 알려진 사안"이라며 "지금까지도 여러 위기를 잘 관리해 온 만큼, 이번에도 적절한 자구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