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별세한 뒤 나흘간 내내 부고 기사를 썼습니다. 신격호 의 지나간 삶을 되짚었고, 그가 써내려 간 발자취를 훑었습니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롯데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취재를 하며 롯데는 한국과 일본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는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큰 성공을 했지만 한국인이란 차별과 늘 싸웠습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 1978년 복싱 선수 홍수환이 일본에서 일본일 선수를 때려 눕히자 일부러 만나 거액을 쥐어줄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선 더 했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 기업’이란 것이 일반 정서였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 악화 때마다 타깃이 됐습니다. 작년에도 ‘일본 불매운동’의 역풍을 크게 맞았습니다.
롯데와 비슷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추성훈 입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추성훈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롯데 처럼 철저한 ‘이방인’으로 취급됐습니다.
추성훈은 원래 일본에서 자랐지만 한국으로 귀화한 전력이 있습니다. 한국 국적으로 유도 종목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였습니다. 4년 가까이 노력했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당시 추성훈은 “한국 체육계는 실력보다 파벌이다”고 주장해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 뒤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국가대표 선수가 돼 다시 돌아왔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선수를 꺽고 금메달을 땄습니다. 한국인들 정서가 좋을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추성훈은 일본에서 더 큰 비난을 듣습니다.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해 일본의 격투 영웅 사쿠라바 가즈시를 이긴 탓이 컸습니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사쿠라바 가즈시를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두들겨 팼습니다. 이 장면이 일본 전역에 방송되자 일본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추성훈은 일본인들의 집단 비난을 듣습니다. 경기 뒤 추성훈이 반칙을 했다고 해 경기가 아예 무효 처리가 됐습니다. 누가봐도 실력으로 추성훈이 압도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일본인들 ‘자존심’이 지켜졌던 것 같습니다.
추성훈은 격투기 팬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큼 출중한 유도 실력, 격투기 실력을 다 갖췄지만 시합 때마다 늘 관중들 야유를 들었습니다. 한쪽 가슴에는 태극기를, 다른쪽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다녔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못 한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반전은 그가 ‘사랑이 아빠’로 나오면서 입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추성훈은 ‘딸 바보’로 그려집니다. 그의 딸 사랑이 곁에서 늘 애교를 떱니다. 링 위에 서면 투지 넘치는 파이터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추성훈보다 어눌하고 다소 모자란 진정성 있는 추성훈을 좋아했습니다. 추성훈은 그토록 인정 받고 싶어 했던 ‘격투가’로서가 아니라, ‘사랑이 아빠’로 대중으로부터 큰 인정과 사랑을 받습니다.
실력을 자랑한다고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긴 어렵습니다. 힘이 아무리 세도 사람들 마음을 꺽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롯데가 스타필드보다 더 커다란 초대형 쇼핑몰을 짓고, 롯데월드타워보다 더 높은 빌딩을 세운다 해도 이방인이란 그늘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신격호 회장은 이제 떠났습니다. 그의 아들 신동빈 회장이 바통을 넘겨 받아 새로운 롯데를 준비 중입니다. 신격호 회장의 타계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롯데에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격호 회장의 '업보'인 일본 기업이란 이미지를 일부라도 털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동빈 회장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작년부터 신동빈 회장은 공감이란 키워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돈 많이 벌고, 이익 많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로부터 공감받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이방인 롯데가 사랑받는 롯데로 거듭 나길 기대해 봅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