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기다렸는데"…소비자 울리는 '개통 지연' 사기 [김은지의 텔레파시]

입력 2020-01-22 10:38
수정 2020-01-22 14:28
[편집자주] 정보기술(IT)의 바다는 역동적입니다. 감탄을 자아내는 신기술이 밀물처럼 밀려오지만 어렵고 생소한 개념이 넘실대는 통에 깊이 다가서기 어렵습니다. 독자들의 보다 즐거운 탐험을 위해 IT의 바다 한가운데서 매주 생생한 '텔레파시'를 전하겠습니다.


"2주째 개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분증을 맡겼는데요. 더 기다려도 괜찮을까요?" 20대 대학생 김정길씨(가명)는 보조금을 많이 얹어주기로 유명한 이른바 '성지'에서 2주 전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하지만 판매점은 단가가 맞지 않는다며 개통을 미뤘다. 돈을 더 주고라도 당장 개통해야 할지, 계약을 철회해야 할지 김씨는 고민에 빠졌다.

이처럼 휴대전화 판매점의 '개통 지연'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개통 전 제품을 개봉할 경우 계약 취소나 환불이 어려워 주의가 요구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개통 지연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적지 않다. '뽐뿌'·'알고사' 등 휴대전화 구매정보 커뮤니티에서도 이같은 사례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개통이 지연되면 판매점과 휴대전화 구매 계약은 맺었으나 개통이 안 돼 새 휴대전화를 쓸 수 없는 상황을 겪는다.

특정 이동통신사 제품만 취급하는 대리점보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이통3사 제품을 모두 취급하는 판매점에서 개통 지연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대리점보다 훨씬 가격 경쟁이 치열한 탓이다. 보조금을 많이 지급해 '성지'라 불리는 판매점들도 통신사 이동(번호이동)이 가능한 판매점이 대부분이다.

"(개통) 단가가 맞지 않는다"며 개통을 지연하는 판매점이 상당수로 파악된다. 신형 스마트폰을 다른 곳보다 싸게 판다고 홍보해 고객을 모았지만, 이통사 보조금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계약 당시 단가를 맞출 수 없다는 얘기다.

일정 기간 지연돼도 실제 개통으로 이어지면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차일피일 개통을 미루던 판매점이 고객에게 계약 당시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거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사례가 소비자 속을 썩이는 케이스다.

애초에 계약이 성립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 과도한 불법보조금으로 소비자를 유인한 후 고의로 '개통 지연'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유명한 성지를 찾아 계약하고 왔는데 개통까지 1~2주 기다리라고 하더니 2주가 지나니 다시 2주를 더 기다리라고 한다. 당장 개통하려면 추가금을 내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개통 전에 제품을 개봉하면 상황은 더 난감해진다. 휴대전화는 제품 개봉 즉시 중고품으로 간주된다. 계약 철회나 환불이 어렵고 판매점 요구대로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

이통사로서도 개통 전 개봉한 제품에 대해서는 계약 철회나 환불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 한 이통사 관계자는 "전산으로 개통 처리가 되지 않았으므로 통신사와 계약을 맺은 고객이라 볼 수 없다. 계약 철회나 환불은 판매점 재량에 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짜 문제는 개통 지연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를 구제할 방안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판매점의 불법보조금 지급은 단말기유통법 위반행위에 해당된다. 상황 자체가 불법이라 피해를 입는다 해도 마땅한 소비자 구제방안이 없다.

이통업계는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판매점은 과신하지 말라"며 소비자 주의를 당부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과도한 불법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약속은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판매점에 신분증을 맡기는 것도 위험한 행위"라며 "단통법 위반에 해당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이 파기돼도 소비자를 구제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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