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미국 경기가 올해 괜찮을 것이라는 데는 거의 모두가 동의합니다. 미중 1단계 무역합의(물론 내용은 시원치 않지만)로 관세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침체 우려는 크게 낮아졌습니다.
여기에 미 중앙은행(Fed)은 지난해 7~10월 세 번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10월부터는 월 600억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과 레포(환매조건부채권) 시장 개입을 시작했습니다.
Fed는 장기금리 하락을 목표하지 않은 만큼 양적완화(QE)가 아니라고 우겼지만, 21일(현지시간) 다보스포럼에 온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까지 "재무부 채권(T-bill)을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QE"라고 말할 정도로, 시장은 ‘QE 4’가 행해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커들로 위원장은 또 올해 미국 경제가 최소 3%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게다가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금리를 인상하기기 전에 지속적이고 상당한 물가상승을 보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상당기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시장은 최소 올해는 금리 인상이 없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런 기대는 뉴욕 증시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입니다.
월가의 한 전문가는 "통상 이 정도로 경기 전망이 좋고 시장이 급등하면 금리 인상을 우려하게되는데, 이번에는 Fed가 당분간 금리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투자자들이 마음놓고 주식을 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레이 달리오 브릿지워터 창업자는 "현금은 쓰레기"라며 다변화된 투자를 권고했습니다. 또 월가의 유명 투자자들인 스탠리 드러큰밀러나 데이비드 테퍼 등도 Fed의 완화적 통화정책 등을 근거로 추가 상승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무역전쟁, 침체, 금리 인상 등 위험들이 사라지면서 추가 상승의 걸림돌로는 너무 높아진 밸류에이션 정도가 꼽힙니다.
미 증시의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50%를 넘어섰고,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등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미 증시의 2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날 '우한 폐렴'이 미국까지 확대되면서 뉴욕 증시의 다우 지수는 6일만에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우한 폐렴'은 아직은 단기 변수 정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다들 올해 말까지 침체 우려는 없다고 본다. 그런 만큼 증시는 꾸준히 상승하겠지만 지수가 워낙 올라있는 만큼 많은 투자자들이 언제쯤 팔고 나와야할 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상승장에서 매도를 부를 수 있는 리스크로는 세 가지 정도가 꼽힙니다.
①기업 실적이 분기마다 급증할 수 있을까
금융주 중심으로 나온 현재까지의 4분기 기업들의 실적은 괜찮은 편입니다. 시장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주까지 S&P500 기업의 9%인 44개 기업이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이 중 71%가 예상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금융주는 당초 가장 실적이 좋을 것으로 예상한 기업들인 만큼 이어지는 기술주, 유통주 등의 실적을 주시해야합니다.
S&P500 기업들의 실적은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세 분기 연속 전년 동기에 비해 소폭 감소했었습니다. 2018년 법인세 감소 효과로 이익이 급증했던 만큼 기저효과가 컸지요.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월가에선 4분기 실적도 전년동기 대비 2% 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이대로 나오면 네 개 분기 연속 감소하는 것인데요, 그에 반해 시장은 지난해 30%, 올들어서도 3% 넘게 올랐습니다.
하지만 통상은 실적은 낮춰놓은 예상보다는 좋게 나오는 만큼, 4분기는 전년 동기보다 소폭 증가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많습니다.
다만 월가에서 중시하는 건 이번 분기가 아니라 그 이후 실적입니다. 미중 무역합의 등의 효과로 경기가 개선되면서 올 1분기 4%, 2분기 6%, 3분기 9% 등 기업 이익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작년에 이익이 감소했던 것도 올해 증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합니다. 이런 예상이 지금의 증시 상승세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예상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지금의 높은 밸류에이션은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건스탠리 등 일부에선 1단계 무역 합의에도 대부분의 관세가 유지되는데다, 임금 상승률이 지속적으로 3% 수준에 달하고 있는 만큼 기업 실적이 예상만큼 늘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②Fed가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낼까
자산 시장은 급등하고 있습니다. 버블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날 유명 헤지펀드 투자자인 폴 튜더 존스는 "현재 주식시장이 닷컴 버블이 터지기 전인 1999년 초와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통화 완화와 재정 부양이 맞물리면서 금융시장에 폭발적 결과를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저금리로 인해 열기가 주택시장으로 옮겨붙는 분위기입니다. 지난주 발표된 12월 신규주택 착공 건수가 160만8000건으로 전달보다 16.9% 급증했습니다. 주택 버블이 한창이던 2006년 12월 이후 13년만에 최고치입니다.
이런 자산 시장의 거품은 경기 과열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만약 Fed가 금리를 높이려는 신호를 보낸다면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는 "그렇게 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해고하겠다고 나설 것이기 때문에 Fed가 오는 11월 대선까지는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③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까
월가의 많은 이들은 가장 큰 위험으로 대선을 꼽습니다. 오늘 나온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펀드매니저 설문에서도 가장 큰 리스크로 미 대선이 지목됐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트럼프 대통령을 누르고 민주당의 진보적 후보가 당선될 경우 뉴욕 증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겁니다. 기관투자자들의 75%가 트럼프의 재선을 원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대선 경선의 시작을 알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를 2주 앞두고 현재 민주당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무섭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 때 각광받았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곳곳에서 견제가 집중되며 칼날이 무뎌진 상황이지만, 샌더스 의원의 젊은 지지자들은 점점 더 집결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지난 16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샌더스가 20% 지지율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19%)을 앞서기도 했습니다.
샌더스는 자칭 '사회주의자'입니다. 워런 의원은 '자본주의자'로 자본주의 병폐를 고치겠다고 나선 사람이지만 샌더스는 자본주의자조차 아닙니다.
게다가 민주당 주자들은 후원금 모금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세 배 앞서고 있습니다. CNBC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모금한 후원금은 1억4380만 달러지만, 민주당 후보자들이 받은 후원금은 총 5억156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물론 여러 명이 모은 것이긴 하지만, 그만큼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거 열기가 뜨거운 것으로 해석됩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는 오는 3월3일 슈퍼화요일에 사실상 결정됩니다. 이날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16개주에서 선거인단 선출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은 지난해 'FOMO'(Fear of Missing Out)의 공포를 겪었습니다. 미리 주식을 팔았다가, 혹은 현금을 쥐고 있다가 증시 랠리에서 소외됐었던 그런 공포입니다.
그래서 올해 투자자들이 쉽게 증시를 등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적, 금리, 대선 등 세 가지 위험은 11년째로 들어선 장기 강세장을 죽일 수도 있는 변수입니다. 잘 지켜보며 투자를 해야겠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