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의 논점과 관점] AI, 중국 따라가야 하는 이유

입력 2020-01-21 18:40
수정 2020-01-22 00:26
“무조건 중국을 베껴야죠.” 얼마 전 만난 인공지능(AI) 분야 전문가는 미국 중국 등과 벌어진 AI 격차를 좁힐 방안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과거 일본 기업을 모방해 추격에 성공했듯이 AI 분야에서도 중국을 벤치마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중국 AI 교과서와 알리바바가 운영 중인 항저우시 교통 시스템이다.

중국의 ‘AI 굴기’는 여러 조사와 통계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막대한 투자에다 14억 명이라는 인구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原油)’로 불리는 빅데이터 생산 측면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 전문가가 강조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중국이 민간의 역량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리바바, AI로 스마트 교통

중국 고교생용 AI 교과서인 ‘인공지능 기초’는 얼굴인식 분야 AI 기업인 센스타임 창업자가 화둥사범대와 공동 발간했다. 상하이와 베이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40개 이상 고교에서 활용되고 있다. 기초지식을 습득한 뒤 AI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기업 현장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 중국에는 초등학생, 중학생은 물론 유치원생용 AI 교과서까지 있다.

항저우시는 2017년부터 이곳에 본사를 둔 알리바바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알리바바 AI 시스템인 ‘시티 브레인’은 도시 전역의 교통정보를 수집해 실시간으로 제어함으로써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바꿨다. 중국은 바이두(자율주행차), 텐센트(스마트의료), 아이플라이텍(음성인식) 등 선도 기업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7년만 해도 중국 AI 기술력은 한국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강인 미국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2030년까지 AI 세계 1위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허황하게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선(先)허용, 후(後)규제’라는 신산업 정책 기조도 한몫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알파고 쇼크’가 우리에겐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2016년 구글 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을 지켜보면서 AI 시대가 눈앞에 왔음을 인식하게 됐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AI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 주요 과제로 삼았다. 지난해 말엔 ‘AI 국가전략’까지 내놓았다.

민간 주도형 국가전략 짜야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정부의 행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전략에 현장은 별로 없고, 장밋빛 전망이 빼곡하다. 2030년 AI 기술 경쟁력을 미국 대비 95%까지 끌어올리고, 455조원의 경제효과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다. 100대 추진과제에 실업급여 확대 방안을 포함한 것을 보면 억지로 숫자 채우기에 바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우수한 인재 육성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AI대학원과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등을 통해 2022년까지 AI 전문인력 1000명을 양성하고, 2030년까지 연 1만 명의 인력을 확보하겠다고 하지만 경쟁국에 비해 부족하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묶어놓고 정부가 말한 ‘세계 최고의 AI 인재 양성’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가별로 보유한 자산과 환경이 다른 만큼 접근법도 같을 수 없다. 그렇다고 말의 성찬만으로 미래를 열 수는 없다. 국가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AI 선도국이 잘하는 정책은 베껴서라도 적용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는 과감히 풀어야 한다. AI 성공을 위해 중요한 것은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기업들이 마음껏 개발하고 정부는 뒤에서 밀어주는 민간 중심의 AI 전략을 새롭게 짤 필요가 있다.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