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감성과 은유를 더한 산업디자인 거장의 예술혼

입력 2020-01-21 18:20
수정 2020-01-22 03:16
디자인은 현대인의 일상과 밀접하다. 당대의 정치·경제·문화 현상이 삶 속에 파고들었다면 디자인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석유 파동이 일어났던 1970년대에 자동차 디자인이 대거 바뀔 수밖에 없었다. 육중했던 자동차들은 기름을 덜 먹고 바람의 저항을 덜 받도록 보닛이 납작하게 디자인됐다. 이탈리아 ‘국민 디자이너’ 아킬레 카스틸리오니(1918~2002·사진)가 트랙터의 볼트와 너트, 금속판, 나무와 같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을 활용해 ‘메차드로(반소작인)’ 의자를 만든 것도 이즈음이다. 카스틸리오니는 인간 중심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으로 각광받았고, 기능주의적 디자인에 치중돼 있던 세계 디자인계에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그의 산업디자인 작품들이 대거 서울을 찾았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지난 17일 개막한 카스틸리오니 특별전은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이탈리아 특유의 감수성을 반영한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카스틸리오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시아 최초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디자인과 드로잉, 일러스트, 영상물 등 100여 점이 얼굴을 내민다.


카스틸리오니는 트랙터에 달린 플라스틱 의자를 활용해 디자인한 ‘메차드로’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밀라노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는 친형인 피에르 지아코모와 함께 전시 공간연출이나 조명연출과 같이 대중과 직접적인 접촉이 많은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었다. 두 형제는 하이엔드 디자인 경향을 선보이며 이탈리아 디자이너 최고의 영예인 ‘황금콤파스상’을 아홉 번이나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형제의 가족 생활, 스튜디오 활동, 이탈리아 디자인의 문화적인 힘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전시 공간에 꽉 들어찼다. 강렬하고 섬세하다. 의미 없는 치장보다는 가치 있는 쓰임새라는 본질에 집중하며 무게감과 안정성을 얻고 전통성도 아우른다.

카스틸리오니가 가로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62년에 제작한 ‘아르코 플로어 램프(ARCO floor lamp)’는 거실에서 무언가 읽기를 좋아하는 여성을 위해 고안했다. 60㎏짜리 대리석을 받침대로 사용했고, 반사경을 달아 천장 조명까지 아울렀다. ‘롬피트라타 스위치’는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 철학인 ‘익명’의 개념을 함축적으로 녹여낸 수작이다. 선을 따라 손을 움직이면서 엄지손가락 끝을 자연스럽게 빈 공간으로 밀어 넣으면 스위치가 켜진다. 출시 이후 1500만 개 이상 판매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자전거 안장을 결합한 의자 ‘레디메이드’는 앉는 행위와 움직이는 행위를 조화롭게 연결시킨 발상이 돋보인다. 유선전화기를 사용하며 느꼈던 불편함을 재미있게 풀어낸 의자 ‘셀라 스툴’, 강아지 스누피를 닮은 스탠드, 트랙터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온 시트와 가로대를 자전거에서 흔히 쓰이는 고정 나사로 조립한 형태의 의자 등도 눈에 띈다. 전시는 오는 4월 26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