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독자 파병' 고육책…왕건함, 페르시아만까지 넘나든다

입력 2020-01-21 17:22
수정 2020-01-22 01:19
정부가 21일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 미국 주도의 호위연합체인 국제해양안보구상(IMSC) 참여가 아니라 청해부대 ‘독자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은 한·미 동맹과 대(對)이란 외교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작년 하반기 이후 한국군의 호르무즈 파병을 압박해온 미국 요구에 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중동권 첫 수교국인 이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독자 파병 방식으로 수위 조절을 했다는 분석이다. 미·이란 갈등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파병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는 여권의 계산도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달 들어 ‘독자 파병’으로 선회

우리 군의 호르무즈 독자 파병 기류는 이달 들어 정부 내에서 감지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호르무즈 파병과 관련해)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청해부대 임무에 국민 안전보호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독자 파병에) 청해부대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도 정부가 미국 주도의 IMSC에 참여해 이란을 단숨에 적으로 돌려세우기보다 독자 파병 등 우회적인 파병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독자 파병 결정은 지난 16일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전주 한·미·일 고위급 안보협의차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정 실장이 미국에 독자 파병 방침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 유럽 잇따라 독자 파병 결정

정부가 이날 밝힌 청해부대 파병 계획은 일본이 지난해 발표한 자위대 독자 파병안과 비슷하다. 일본은 P3C 해상초계기와 호위함 1대씩을 중동 지역에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작전 범위 역시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오만만과 아라비아해 북부, 아덴만 등으로 청해부대와 겹친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덴마크, 그리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 8개국은 20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의 안전 확보를 위해 독자적인 해상 경비에 나서겠다고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미국 주도의 IMSC에 참여하는 나라는 미국을 포함해 호주, 영국,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알바니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7개국이다.

이번 파병 결정은 미국, 이란과 사전 협의를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은 한국의 결정을 환영하고 기대한다는 수준의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왕건함은 IMSC에 참여하지 않지만 필요한 경우 IMSC와 정보 공유 형태로 협력할 방침이다. 미국 방침을 배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외교부는 “이란은 한국 결정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자국의 기본 입장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방위비 협상 ‘막판 협상카드’ 될까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 확대로 31진 왕건함의 작전 반경은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 호르무즈 해협, 페르시아만까지 늘어나게 됐다. 직선 거리 기준으로 작전 지역이 기존 1130㎞보다 2836㎞ 더 늘어난다.

정부는 지난해 미국이 호르무즈 파병을 요청한 이후 청해부대 파병의 법률적 검토를 진행해왔다. 2014년 내전이 격화됐던 리비아에서 한국 교민 철수를 위해 청해부대를 파견하면서 작전 지역을 일시적으로 확대한 과거 사례도 모두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호르무즈 독자 파병 결정이 진행 중인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우리 정부의 카드로 사용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동맹국들의 글로벌 방위 분담 차원에서 호르무즈 파병이 일종의 기여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호르무즈 파병과 방위비 협상은 별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정호/임락근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