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소형 SUV도 고장력 강판 비율이 에쿠스 수준은 뛰어넘습니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안전성을 묻는 질문에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작은 차도 안전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소형 SUV에 적용되는 고장력·초고장력 강판 비율이 점차 높아져 80%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소형·준중형 SUV 차체에 적용된 고장력·초고장력 강판 비율은 기아차 셀토스 75%, 한국GM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78%, 쌍용차 베리 뉴 티볼리 79%를 기록했다.
차체에서 초고장력 강판 비율만 따지면 셀토스 45%, 트레일블레이저 티볼리 40% 트레일블레이저 22%(기가스틸)가 적용됐다. 고장력 강판은 1mm²당 60kg의 하중을, 초고장력 강판은 1mm²당 100kg의 하중을 견딘다. 기가스틸은 알루미늄보다 3배 강한 초고강도강으로, 일반적인 초고장력 강판보다 강도가 뛰어난 차세대 강판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고장력 강판과 초고장력 강판 사용 비중이 높을수록 승객룸은 더 단단해져 사고 상황에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옆 면이 치이더라도 차체가 잘 비틀리지 않게 되고, 전복되는 경우에도 차량 무게의 5배 가량을 버텨 안에 탑승한 승객들의 부상 가능성이 낮아진다.
초고장력 강판이 적용되며 주요 충돌부위에는 핫스탬핑 공법도 함께 사용됐다. 과거 대형 고급차에나 쓰이던 공법이 소형 SUV로 확장되며 승객룸의 안전성도 동급으로 높아졌다. 핫 스탬핑은 금속 소재를 900∼950도 고온으로 가열한 상태에서 금형을 찍어낸 뒤 급량시키는 공법이다. 기존 강판 두께를 유지하면서도 강도를 2~3배 높이고 무게는 15~25% 줄일 수 있다.
소형 SUV에 고장력 강판 비율이 높아진 것은 소형차의 중심이 경차에서 소형 SUV로 옮겨간 영향이다. 4~5년 전만 하더라도 소형차 시장 중심에는 경차가 있었다. 제조사들은 '작은 차는 안전하지 않다'는 소비자 인식을 극복하고 경차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고장력 강판 비율은 70%대까지 높인 바 있다. 당시 수요가 많지 않던 소형 SUV는 고장력 강판 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소형차 시장 트렌드가 경차에서 소형 SUV로 바뀌며 '작은 차는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극복하는 임무도 소형 SUV가 맡게 됐다. 제조사들은 급성장하는 소형 SUV 시장에서 승자로 거듭나고자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안전도를 높여야 했고, 이를 위해 고장력·초고장력 강판 비율부터 늘리기 시작한 것.
고장력·초고장력 강판을 늘리면 차량 무게가 줄어든다는 점도 소형 SUV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고장력·초고장력 강판을 사용해 차체를 20% 경량화하면 연비가 10~16% 개선되는 효과도 발생한다. 업계 관계자는 "소형차를 고르는 소비자들은 유지비에도 민감한 편"이라며 "대형차에서는 다소 낮은 연비가 용인되지만 소형차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에서도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교통안전연구원에 따르면 고장력 강판으로 제조한 승용차를 매년 1만9000㎞씩 10년 운행하면 일반 차량 대비 약 1.8t에 달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발생한다. 무게가 가볍고 연비가 향상되니 배출가스도 줄어드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고장력 강판 제조기술도 향상돼 일반강과 비슷한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 원가 부담이 크지 않아 자동차 차체에서 고장력 강판 비율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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