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도 아니고 창문 블라인드에 무슨 안전기준이 필요합니까.”
한국제품안전관리원 민원조사팀과 함께 서울 송파구의 블라인드 제조업체를 찾은 건 지난 16일. 이 회사가 생산·판매하는 창문 블라인드에 안전기준을 준수했다는 표시(공급자적합성확인)가 없다는 민원이 접수돼서다. 사장 A씨는 “법이 과도하다”고 항변했다. 국내외에서 어린이가 창문 블라인드 줄에 목이 묶여 사망하는 사고가 이어진 뒤 정부가 2012년 안전기준을 강화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민원조사팀에서 제도 도입 취지와 시험 절차 등을 안내받은 A씨는 시공사에 납품했던 제품을 전량 회수하고 제품 안전성 평가를 별도로 받기로 했다.
이 사례처럼 불법·불량 제품을 제조 및 유통하다 제품안전관리원에 적발된 업체가 작년에만 3100여 곳에 달했다. 전년(1500곳) 대비 두 배 이상으로 급증한 수치다.
제품안전관리원은 수입·유통단계의 공산품을 감시·조사하고 제품 수거(리콜) 이행을 점검하기 위해 제품안전기본법에 따라 2018년 9월 설립된 전문기관이다. 요즘엔 일반 소비자의 조사 요청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전동킥보드 같은 융복합 신제품 등 출시 제품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다.
총 인력이 10명에 불과한 민원조사팀은 지난해 6500곳의 제조업체 제품을 검토했다. 전년(3800곳) 대비 71% 늘었다. 전체 조사 대상 업체의 20% 가까이는 지방에 자리잡고 있다. 지방 사무소가 없는 제품안전관리원 직원들은 매번 출장을 다녀야 하는 처지다. 제품안전관리원 관계자는 “매주 서울과 부산 등을 두 번씩 오가는 게 일상”이라며 “인력과 예산이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제품안전관리원 직원들은 제조사 대표가 잠적하거나 위법 행위를 끝까지 부인할 경우 길게는 수개월간 탐문 조사에 나서기도 한다. 경찰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민원조사팀 관계자는 “제조업체 과실을 확인하는 현장조사 때는 조직폭력배에게 위협을 받거나 욕설을 듣는 일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내린 리콜 권고·명령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업무 역시 제품안전관리원 몫이다. 최근엔 ‘액체괴물(슬라임)’에 대한 리콜 준수를 독려하고 있다. 국표원은 작년 11월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액체괴물 중 상당수에서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며 리콜을 명령했다. 제품안전관리원 관계자는 “제품안전관리원은 리콜 명령이 나온 지 2개월 뒤 각 업체를 방문해 이행 결과를 점검한다”며 “소모품 특성상 회수에 어려움이 있다는 업계 건의를 받아들여 품목별로 회수율을 다르게 책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제품안전관리원이 리콜 이행을 점검한 품목은 총 579개(모델 기준)였다. 올초엔 리콜 이행 점검 전담책임제를 도입해 더욱 철저한 사후관리가 가능하게 됐다. 특정 모델에 리콜 명령이 내려지면 최초 점검과 보완명령에 대한 점검 등을 한 직원이 전담하도록 한 제도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