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호 감독 "충성이 총성으로 바뀐 핏빛 권력…10·26 다뤘지만 다큐 아닌 창작"

입력 2020-01-20 17:47
수정 2020-01-21 03:09
“10·26 사건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보여줍니다. 대통령에 대한 부하들의 충성이 총성으로 바뀐 사연의 베일을 걷어 올렸습니다. ‘내부자들’처럼 베일에 싸인 권력자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작품입니다.”

우민호 감독(사진)은 22일 개봉하는 정치드라마 ‘남산의 부장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총 제작비 208억원을 들인 이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흥행 기록(915만 명)을 세운 ‘내부자들’과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186만 명)에 이은 우 감독의 욕망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우 감독을 만났다.

“‘내부자들’이 뜨거운 영화라면 ‘남산의 부장들’은 차가운 작품이죠. 실제 사건이어서 원작의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자극적으로 그리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김충식 작가의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이 작품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사건을 절제된 톤과 연기로 담아냈다. 극중 김규평 중앙정보부장(이병헌 분)이 곽상천 경호실장(이희준 분)과 감정싸움을 하고 총격전까지 벌이지만 대사와 행동은 절제돼 있다.

영화는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권력 구조가 조직원 간 감정싸움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강경파인 곽상천은 매우 단순한 성격이고, 김규평은 복합적인 인물이었어요. 강압적으로 대응하려는 곽상천과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김규평은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어요.”

우 감독은 영화에서 박정희의 용인술도 조명한다. “18년간 권력을 유지한 비결은 뛰어난 용인술이었습니다. 2인자를 키우지 않았던 그는 한 세력이 커지면 잘라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 저울의 균형을 상실했습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쓴소리는 내쳤어요. 권력이 막바지에 왔음을 직감했던 개인적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우 감독은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했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창작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극중 박용각)이 워싱턴DC에서 유신정권의 실체를 폭로한 ‘코리아게이트’ 사건은 10·26보다 2년 전에 일어났지만 영화에서는 40일 전에 발생한다. 김재규와 김형욱은 선후배 사이였지만 영화에서는 친구 사이로 바뀌었다. 우 감독은 “영화적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 차를 좁혔고, 김규평과 박용각(곽도원 분)은 쓰고 버려지는 2인자 신세의 동일인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첩보물 못지않은 스릴을 느끼게 한다. 우 감독은 배우들의 힘으로 공을 돌렸다. “이병헌은 안으로 꾹꾹 감정을 눌렀다가 막판에 쏟아냅니다. 감정을 보여줘야 했기에 얼굴 가까이에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정말 잘 버텨줬어요. 자신의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섬세한 표현을 해냈어요. 정말 대단한 배우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역을 해낸 이성민은 배역과의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곽상천 역 이희준은 체중을 25㎏ 불려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성민의 외양은 특수 분장으로 완성했습니다. 무엇보다 유신 말기 독재자의 두려움을 잘 연기했어요. 이희준은 살을 찌우고 성대도 굵게 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마약왕’에서 그의 강력한 에너지를 보고 캐스팅했죠.”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