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4시30분께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격호 명예회장은 전날(18일)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만일에 대비해 가족들과 그룹 주요 임원진이 병원에 모여 있었고, 일본 출장 중이던 신동빈 회장도 급거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지난달 18일부터 영양 공급 관련 치료 목적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1921년 울산에서 5남 5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만 20세가 되던 1942년 사촌형이 마련해준 노잣돈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와세다대 응용화학부(야간)에 적을 뒀지만 낮에는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이어갔다.
첫 사업은 1944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 제조 공장이었으나 2차 대전에 공장이 전소해 5만엔의 빚만 남았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사업자금을 마련해 1946년 세운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란 공장에서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껌 사업에 뛰어들어 1948년 제과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껌 이후 초콜릿과 비스킷, 아이스크림 시장에서도 잇따라 성공을 거뒀다.
고국인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고, 유통과 관광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73년 서울 소공동에 선보인 롯데호텔과 1979년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를 열면서 입지를 굳혔고,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자산규모 100조원대 재계 5위 그룹으로 우뚝 섰다.
일본으로 유학 갈 당시 신 명예회장의 전 재산은 83엔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롯데그룹의 매출액은 100조원대에 달한다.
신 명예회장이 보유한 개인 재산은 1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에서 롯데지주(지분율 3.10%), 롯데칠성음료(1.30%), 롯데쇼핑(0.93%), 롯데제과(4.48%) 등의 상장사 지분을 보유했다. 여기에 비상장사인 롯데물산(6.87%)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은 인천시 계양구 목상동의 골프장 부지 166만7392㎡를 보유 중인데 이 부지의 가치는 45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광윤사(0.83%), 롯데홀딩스(0.45%), LSI(1.71%), 롯데그린서비스(9.26%), 패밀리(10.0%), 크리스피크림도넛재팬(20.0%) 등의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신 명예회장의 자산과 지분 등 개인 재산이 어떻게 처리될지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간 신 명예회장의 재산 관리는 2017년부터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확정된 사단법인 선이 맡아왔다. 한정후견이란 일정한 범위 내에서 노령, 질병 등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법률행위를 대리하는 제도다.
신 명예회장이 사망한 만큼 한정후견은 종료되고 법에 따른 재산의 상속 절차가 개시될 예정이다. 만약 신 명예회장의 유언장이 있다면 그에 따라 상속 절차가 이뤄지게 된다.
다만 개인 재산에 대한 분배 문제가 향후 롯데그룹의 경영권에는 큰 영햐을 주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재산 문제는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내려지든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나 경영권이 흔들릴 여지는 없다"고 전했다.
신 명예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한편,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이 재계를 이끌던 이른바 '1세대 경영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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