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차-LG '의기투합'…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 세운다

입력 2020-01-19 17:46
수정 2020-01-20 01:17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이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관련한 다각적인 미래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양측은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커지는 글로벌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그룹이 의기투합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협업이 성사되면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은 전기차 관련 사업에 더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2025년까지 글로벌 2위 전기차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한 현대차그룹은 LG에서 양질의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될 전망이다.


현대차, 배터리 확보에 총력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셀 합작법인 설립 등을 포함한 여러 협력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상 중인 합작법인의 출자 지분율은 50 대 50이며, 투자액은 수조원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 LG화학은 합작법인이 설립되면 전기차 관련 사업 투자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매년 급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을 놓치면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2030년께 전체 자동차 판매량 가운데 30%가 전기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기아차가 전기차 및 수소전기차를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연내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9조7000억원을 전동화 사업(전기차 생산 및 관련 사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 회사가 미래 사업 분야에 쓰겠다고 밝힌 금액(20조원)의 절반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약 1조원을 LG화학과의 합작공장을 짓는 데 투입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배터리는 내연기관의 엔진과 같은 핵심 부품”이라며 “완성차업체가 직접 배터리를 제조하는 건 쉽지 않고, 외부 업체에서 전량 구매하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에 합작법인 설립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폭스바겐과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잇달아 배터리업체와 합작사를 설립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LG화학, 연이어 완성차 합작사 설립

LG화학은 배터리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글로벌 완성차업체와 잇달아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국내 라이벌인 SK이노베이션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우군’을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현대차에는 LG화학 배터리가, 기아차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주로 사용된다. 현대·기아차는 2021년부터 양산 예정인 순수 전기차 전용 배터리 공급사로 SK이노베이션을 선정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내년 말부터 5년간 전기차 약 50만 대에 공급되는 규모다. SK이노베이션이 공급하는 배터리는 현대·기아차가 네 차례에 걸쳐 발주할 물량 중 1차분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이 현대차로부터 대규모 공급계약을 따낸 게 LG화학에는 자극이 됐을 것”이라며 “LG화학은 현대차로부터 2~4차 물량을 수주하는 데 집중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10년 이상 쌓은 신뢰가 밑바탕

업계에선 현대차와 LG화학의 배터리 동맹 추진이 장기적인 신뢰관계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의 협력은 2007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정 회장이 먼저 미래차 시장에 대한 얘기를 꺼냈고, 구 회장이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현대모비스(지분 51%)와 LG화학(49%)이 합작한 전기차 배터리팩 제조사 에이치엘그린파워가 탄생했다.

에이치엘그린파워는 LG화학에서 리튬이온 배터리셀을 공급받아 전기차용 배터리팩을 생산한 뒤 현대모비스에 납품한다. 배터리팩은 모듈 형태로 가공돼 현대·기아차의 전기차에 장착된다. 에이치엘그린파워는 현대차와 LG화학을 위한 차세대 배터리팩도 개발 중이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비중이 커지면서 이 회사도 급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2018년 매출은 7577억원으로 전년(4422억원)보다 71.3% 늘었다. 지난해에는 1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업체들이 합작공장을 설립할 때 가장 우려하는 문제가 기술 유출”이라며 “현대차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에 LG화학이 믿고 협력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수/정인설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