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제화 부평공장 역사속으로

입력 2020-01-19 18:03
수정 2020-01-20 02:27
금강제화의 인천 부평공장이 42년 만에 문을 닫았다. 국내 1위 구두 회사의 핵심 공장으로 2000만 켤레를 생산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금강제화 부평공장은 1978년 문을 열었다. 규모는 6612㎡(약 2000평) 정도. 한때 20~30년 경력의 신발 장인 30여 명을 포함해 최대 400명의 직원이 근무했다. 신발이 잘 팔리던 1990년대엔 연간 60만 켤레를 생산했다.

이곳에서 태어나 가장 인기를 끈 신발은 리갈의 최초 구두 ‘MMT0001’ 모델이다. 앞코에 브로그라고 부르는 구멍이 뚫린 디자인이 들어간 제품이다. 지금까지 총 400만 켤레나 팔린 ‘국민 구두’다. 1954년 금강제화가 설립된 해부터 생산한 제품이다. 세대와 유행에 상관없는 클래식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1975년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 측정 품목으로 이 구두가 지정되기도 했다.

수제화 공정을 강조한 헤리티지 라인도 부평공장에서 생산해 100만 켤레나 팔렸다. 젊은 층을 겨냥해 발의 정확한 사이즈를 측정했고 일곱 가지 인기 디자인 중 고를 수 있게 한 점이 인기 요인이었다. 맨하탄, 맨체스터, 뮌헨, 마드리드, 모데나, 멜버른, 밀라노 등 M으로 시작하는 주요 도시의 이름을 제품명으로 단 것도 독특했다.

부평공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굿이어 웰트 제법’을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구두 밑창을 접착제로 붙이지 않고 실로 꿰매는 방식이다. 이탈리아 등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이 기법을 부평공장 생산라인에 적용했다. 금강제화는 약 1500개에 달하는 구두골을 갖고 있을 정도로 한국인 발에 잘 맞는 구두 제작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부평공장은 그러나 명품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고 온라인 저가 브랜드가 넘쳐나면서 가동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금강제화 연 생산량이 10만~15만 켤레로 떨어지면서 부평공장 직원 수도 100명으로 줄었다. 금강제화는 세종시에 있는 옛 조치원 공장 자리에 물류센터와 공장을 통합하기로 하고 부평의 시설을 이전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