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몽펠르랭의 선각자들

입력 2020-01-19 17:40
수정 2020-01-20 00:17
1947년 4월,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작은 산 몽펠르랭에 각국 학자 30여 명이 모였다. 초청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였다. 미국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밀턴 프리드먼, 영국 철학자 칼 포퍼도 참석했다. 이들은 열흘간의 토론 끝에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몽펠르랭 소사이어티’를 결성했다.

당시는 칼 포퍼가 말한 대로 ‘열린사회의 적들’이 가득한 시기였다. 소련과 동유럽을 점령한 공산주의와 국가의 시장 개입을 주장한 케인스주의가 범람했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노예의 길’”이라며 “정부 개입은 저성장·고물가 상태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1970년대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개인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념이 득세하면서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하이에크의 조언대로 각종 규제를 혁파하고 조세 부담을 줄였다. 그러자 물가가 잡히고 고용과 소득이 늘어나면서 경제가 살아났다. 밀턴 프리드먼 역시 ‘작은 정부론’을 주창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 지출을 늘린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낮고, 공공 지출을 줄인 나라의 성장률이 높은 데서도 확인됐다.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은 “시장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부 실패”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총회에서는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데, 소련과 중국이 사회주의로 망가졌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피터 보에케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자유시장경제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은 한국의 국내총생산이 북한의 40배라는 걸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미국 경제가 호전된 근본 이유도 시장 친화적인 정책 덕분”이라고 했다.

몽펠르랭의 선각자들은 그동안 ‘큰 정부론’의 유혹에 빠질 뻔한 많은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했다. ‘산속의 외톨이 경제학자들 모임’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던 회원 중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8명이나 나왔다. “공산주의는 필연코 망한다”고 했던 하이에크는 노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거봐, 내가 뭐랬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