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화가 박수근의 유화 작품 ‘공기놀이하는 아이들’(43.3×65㎝)은 작년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23억원에 낙찰됐다. 김환기 작품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을 장악하면서 박수근 작품은 3억~5억원대 유화 작품 위주로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오랜만에 고가에 판매된 것이다. 지난해 경매시장에서 박수근 작품은 총 41점이 출품돼 33점이 팔렸다. 낙찰률 80.4%(낙찰액 60억원)를 기록하며 ‘이름값’을 했다. 1964년 작 ‘귀로’(6억8000만원)와 1960년 작 ‘집골목’(5억3000만원), ‘좌판’(3억8000만원) 등이 억대 작품에 합류했다.
그림값을 ‘호(22.7×15.8㎝)’ 기준으로 계산해 보니 박수근 작품이 국내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최근 발표한 ‘KYS 미술품가격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된 박수근 작품의 호당 가격은 전년(2억1000만원)보다 16%가량 상승한 2억3851만원으로 1위에 올랐다. 서울옥션, K옥션 등 경매회사 여덟 곳의 온·오프라인 경매에서 낙찰된 작품의 평균 호당 가격을 비교한 결과다. 다음으로 김환기(3490만원), 이우환(1474만원), 박서보(372만원), 김창열(291만원) 순으로 호당 가격이 높았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2005년부터 동일한 재료로 비슷한 주제를 그린 10호 크기 작품을 기준으로 호당 가격을 산정해 왔다. 김영석 감정위원장은 “급변하는 미술시장에서 작품 가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호수 기준’ 가격을 개발했다”며 “박수근의 호당 가격(2억3851만원)을 100으로 했을 때 다른 작가 작품값을 수치로 표시한 게 ‘KYS 미술품가격지수’”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박수근의 호당 가격이 100이라면 김환기는 14.5, 이우환은 6.1, 박서보는 1.5가 된다.
박수근 작품의 호당 가격은 2위를 기록한 김환기보다 일곱 배가량 높았다. 미술품 가격을 결정하는 데 재료, 바탕, 크기보다는 화가의 명성과 작품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관계자는 “박수근 작품에 대한 애호가들의 선호도를 유통 물량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인물과 풍경 등 소재에 따른 가격 차이도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김환기의 호당 가격은 경기침체 영향으로 조정을 받아 전년보다 22%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큰손’ 컬렉터들은 경매시장에서 김환기 작품 90점을 사들이는 데 모두 249억원을 ‘베팅’했다. 경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성과 시장성을 고루 갖춘 김환기의 그림이 안정적 투자 종목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환기와 함께 대표적인 ‘블루칩 작가’로 꼽히는 이우환의 그림값은 침체된 미술시장에서도 소폭 상승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메츠를 비롯해 중국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 미국 뉴욕 디아비콘미술관, 워싱턴DC 허시혼박물관 등 잇따른 해외 전시 영향으로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점’과 ‘선’ 시리즈보다 ‘바람’ 시리즈의 상승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984년 작 ‘동풍’이 20억7000만원에 낙찰돼 ‘바람’ 연작 중 최고가 기록을 썼다. ‘점’과 ‘선’ 시리즈의 희소성으로 인한 틈새를 ‘바람’ 시리즈가 대체하고 있는 현상으로도 해석된다.
호당 가격은 1호 크기 그림의 평균 가격을 말한다.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의 규격으로, 1호는 엽서 두 장 크기인 가로세로 22.7×15.8㎝를 뜻한다. 대개 10호(53×45.5㎝)~30호(90.9×72.7㎝) 크기의 작품 가격은 호당 가격과 정비례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