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분기 정점을 찍고 하강 곡선을 그렸던 반도체 경기가 최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이 반도체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5G, AI가 이끄는 반도체 호황이 2~3년 이상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17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DDR4 8Gb) 현물가격은 지난 16일 3.3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보다 9.9% 올랐다. 같은 기간 낸드플래시(3D TLC 256Gb) 가격도 5.3% 상승했다.
최근 현물가격 오름세는 고정거래가격 상승의 예고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구글 등의 서버 투자 재개와 스마트폰업체들의 신제품 출시로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1분기 D램 고정가격이 5% 오르고 2분기부터는 상승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5G와 AI가 반도체 장기 호황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늘고 있다. 대용량 데이터를 전송하는 5G 이동통신 서비스 확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를 불러온다. 최근엔 AI 기능이 적용된 전자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되면서 AI 칩 수요도 커지는 추세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내년 말까진 5G 확대, 그 이후엔 AI와 사물인터넷(IoT)이 반도체 시장을 끌고 갈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기업의 실적도 호전될 전망이다.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47.9% 늘어난 40조1660억원, SK하이닉스는 149.9% 증가한 7조3292억원에 달할 것으로 증권업계는 예상하고 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D램 2분기 본격 반등"…5G 올라탄 반도체 '슈퍼사이클' 진입 신호
보릿고개 넘은 메모리 반도체…5G·AI發 호황 기대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는 수요처가 새로 탄생할 때만 온다. 2000년 주인공은 PC였고, 2010년에는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했다. 역대 최고의 ‘슈퍼 사이클’이었던 2017~2018년 호황의 주역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등 서버 업체들이었다. 이들 기업은 거대한 인터넷 데이터센터(IDC)를 구축하기 위해 메모리 반도체를 모조리 사들이면서 가격을 밀어올렸다.
문제는 호황이 지나가고 난 뒤다. 호황기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반도체업계는 잇따라 증설에 나서고, 이는 공급 과잉으로 이어져 가격을 끌어내리게 된다. 지난해부터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반도체업계에서는 올해 새로운 수요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인공은 5세대(5G) 이동통신이다. 서버 증설 붐 때만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진 않겠지만, 반도체 가격을 끌어올리기에는 충분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5G발(發) 수요는 살아나고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증권사 전망치 평균)은 지난해보다 47.9% 늘어난 40조16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상 최대였던 2018년의 58조9000억원에는 못 미치지만, 작년(27조7000억원)에 비해서는 12조4600억여원 많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품) 부문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3조8400억원에서 올해 23조3650억원으로 68.8% 늘어날 것으로 증권사들은 내다봤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도 지난해보다 149.9% 늘어난 7조3292억원에 이를 것으로 증권사들은 예상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올해 2분기 D램 가격이 본격적으로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G를 중심으로 한 수요 증가와 지난해 주요 업체가 시작한 반도체 감산 효과가 맞물리면서다. D램 가격은 이미 바닥을 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4 8기가비트(Gb) D램의 지난해 12월 고정거래가격은 2.81달러로 전달과 같은 수준이었다. 낸드플래시는 반등했다. 128Gb MLC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해 12월 4.42달러로 전달보다 2.55% 상승했다.
세계 모바일 D램 수요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업체들이 올해 5G 스마트폰을 잇따라 선보일 계획이어서 반도체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5G 이동통신이 대중화되면 더 많은 영상과 게임 등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메모리 반도체 탑재량도 늘어나게 된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해 모바일 D램 수요는 지난해보다 2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급격하게 위축됐던 서버용 D램 수요도 살아날 조짐이다. MS는 지난해 6개 지역에 IDC를 지었다. 아마존은 지난해 3개에 이어 올해 3개 지역에 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예상치 못한 감산 효과까지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데 비해 공급 증가 요인은 많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업계는 지난해 D램 생산 라인을 CMOS이미지센서(CIS)로 전환하는 등 사실상의 감산 작업에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공급 차질’까지 발생했다.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는 지난해 6월에 이어 이달 7일에도 공장(팹6)에서 화재가 나면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피해 규모가 크진 않지만 글로벌 낸드플래시 재고량이 크게 줄어든 시점이어서 메모리 반도체 시황 회복을 가속화할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에 1분가량 전력 공급이 끊겨 일부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가격 반등 가능성이 커지면서 수요자와 공급자 간 ‘눈치작전’도 다시 시작됐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낸드 11만 장(웨이퍼 투입 기준), D램 5만 장 규모의 증설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생산 업체들은 낸드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면 수요가 줄어들 수 있는 만큼 공급량을 늘려 가격 상승폭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5G 이동통신이 반도체 수요를 이끌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AI(인공지능)와 자율주행차 관련 산업이 계속 커질 전망이어서 반도체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수/정인설/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