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업銀 노조위원장 "윤 행장 출근 저지 투쟁, 월급 올리려는 게 아니다"

입력 2020-01-17 13:36
수정 2020-01-17 14:16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금융권 통틀어 역대 최장 출근 저지 기록인 15일째 을지로 본점으로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의 14일 출근 저지 기록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윤 행장은 17일 오전 을지로 본점 대신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0년 여성경제인 신년회'으로 향했다. 세 차례 본점 출근을 시도했지만 기업은행 노조의 반대에 막혀 발길을 돌린 만큼 당분간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을지로 본점 1층에 투쟁 상황실을 마련해 '낙하산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일부터 매일 아침 오전 8시께 100여 명의 노조원들이 모이고 있다.

출근 저지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노조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조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인 임명권을 무시하고 있다' '노조 때문에 기업은행 이미지가 나빠지고 경영상황이 어려움에 빠졌다' 등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노조가 임금, 복지 등 이익을 위해 무리한 투쟁에 나서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노조 내부에서도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윤 행장이 세 차례나 발길을 돌리자 여론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노조 집행부가 뚜렷한 출구 전략 없이 투쟁 강도만 높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17일 <한경닷컴>과 만나 "노조가 투쟁할 때는 내부 정서와 외부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아직까진 큰 동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안감을 갖고 있을 직원과 기업은행 고객께 걱정을 끼친 부분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있다"면서도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기 위한 성장통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서울 중구 기업은행 을지로 본점 투쟁 상황실에서 김 위원장의 생각을 들어봤다.



▲금융권 역대 최장 기록인 15일 연속 은행장 출근 저지라는 기록이 세워졌는데.

"낙하산 임명 상황도 그렇고 임명 후에도 청와대나 정부, 여당이 사태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보니 역대 최장 출근 저지라는 기록이 연출된 것이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중에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은행이다. 다른 국책은행과 달리 시중은행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전문성 있는 행장이 꼭 필요하다. 10년간 큰 폭의 성장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전문성 있는 내부 출신 행장이 배출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일 때 낙하산 인사 반대에 힘을 실어주면서 내부 행장 전통을 이어왔는데, 그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집권 세력이 되면서 과거의 말과 약속을 뒤집었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출근 저지 최장 기록에 대해서는 노조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

"국민이나 중소기업계에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다. 노조가 경영 현황이나 사업 계획에 적극 협조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중소기업 지원 자금이 출근 저지 때문에 늦춰지고 있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이 더 책임감 갖고 흔들림 없이 업무에 임하고 있다.

많은 조합원이 투쟁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현재 더 투쟁 취지에 동의해 주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안감을 갖고 있을 직원과 기업은행 고객께 걱정을 끼친 부분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있다."

▲윤 행장은 대화를 꾸준히 시도하는데 노조가 거부하고 있다. 노조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투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명확히 말씀드리는 건 이번 투쟁은 기업은행 임직원의 복지나 급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기재부의 지침에 따라 급여와 복지 사항이 정해진다. 월급 올리려고 투쟁하는 것 아니냐고 하실 수 있는데 전혀 아니라고 약속드릴 수 있다.

기업은행이 시중은행과 동일한 사업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는데 관치와 낙하산 인사가 허용될 경우 향후 3년, 6년 뒤 기업은행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정치에 휘둘리는 조직이 되지 않기 위해 임명 프로세스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으려는 것이다."



▲윤 행장이 세 차례나 노조 반대로 발길을 돌렸다. 여론이 바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노조가 투쟁할 때는 내부 정서와 외부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현재까지 내부 정서는 물론이고 여론도 노조가 잘하고 있다는 쪽으로 쏠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그런 부분에 책임져야 할 청와대와 여당은 책임의 무게를 모르는 것 같다.

노조는 청와대와 여당이 대화를 제의하면 언제든 나간다는 입장이다. 대화를 거부하거나 단절하겠다는 게 절대 아니다. 다만 윤 행장과의 대화는 거부한다. 윤 행장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다. 노조는 낙하산 재발방지, 중소기업은행법 개정 등을 통한 투명한 임명 절차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런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윤 행장이 적합하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투쟁 기조가 임명 철회, 자진 사퇴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 있는 사과로 순화됐는데.

"투쟁 초기에는 반드시 낙하산 저지하고 임명 철회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대로 임명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판단하에 책임 있는 사과와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투쟁 기조가 낮아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노조는 청와대와 여당에게 갈등을 해결할 출구를 열어줬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의 요구에 답하지 않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조(금융노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을 끌어들여 갈등을 키우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기업은행 노조가 청와대, 여당과 맞서기에 힘의 균형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낙하산 인사 근절 등의 협약은 기업은행 노조와 한 약속이 아닌 한국노총, 금융노조와의 약속이다.

일부에서는 한국노총이나 금융노조가 기업은행 갈등을 이용해 세력을 확장시키려 한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노총은 오는 21일 집행부 선거를 진행하고 금융노조 새 집행부는 아직 취임하지도 않았다. 힘의 균형을 맞춰 대등하게 협상하고 대화하기 위한 선택에 불과하다."



▲노조 반대로 기업은행 이미지가 악화됐고 인사 정체가 일어났다는 지적도 있는데.

"사측에서 노조의 투쟁력을 저하시키기 위한 프레임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닌가 싶다. 현장 조합원들이 고객들을 상대로 열심히 설득하고,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사 정체의 경우 새 행장이 임명된 지 이제 15일이 됐는데 우리가 반대하지 않았어도 이 정도의 시간은 걸렸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임직원에 대한 인사가 한 번에 이뤄지는 '원샷 인사'의 경우는 조직과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내부 출신이 행장이 됐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외부 인사가 들어오면 노조 반대와 무관하게 2주 만에 원샷 인사를 하긴 힘들다."

▲대화 거부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가.

"대화 거부하고 있지 않다. 복지, 급여 등과 관련된 거였으면 오히려 윤 행장 더 만나려고 했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낙하산 인사 방지 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 여당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면 설날인데 향후 투쟁 계획은.

"설날에도 투쟁 상황실을 유지하면서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저 또는 부위원장 등 집행부가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킬 것이다. 차례상도 마련할 생각이다.

본가가 경기도 광주 쪽인데 부모님께서도 언론 보도를 보시고 '이번에는 못 올 수 있구나'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은행장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 외부 출신이라고 비토(veto·사안에 대한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하는 건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문 대통령을 아주 좋아한다. 신뢰했고 지지했기 때문에 이번 사안에 대해 배신감이 더 큰 게 사실이다. 대통령 사과가 어렵다는 것 안다. 그럼에도 사과할 줄 아는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사태가 해결돼) 윤 행장을 처음으로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

"개인적인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거듭 말하지만 윤 행장과 싸우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본인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클 것 같다. 위로를 전하고 싶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