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가 지난번(1일) 신년사 때 부정적인 지표를 말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말한 내용은 전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청와대의 경제 인식이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지적에 ‘팩트를 골라 말했을 뿐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입맛대로 취사선택한 사실도 진실’이라는 이런 관점은 최근 들어 정부 발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고용지표가 수치상 호전된 것으로 나오자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홍 부총리는 브리핑에서 지난해 12월 30대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3000명 늘어난 점을 콕 집어 “2017년 9월 이후 27개월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고 했다. “월별 지표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던 그의 평소 발언과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이날 브리핑과 기재부 자료에서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정부가 매달 강조했던 ‘정보통신업 취업자’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는 정보통신업 취업자 수가 19개월 연속 증가를 기록했던 지난해 7월만 해도 “첨단 산업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며 적극 홍보했다. 그 후 지표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관련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매달 보도자료까지 내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취업자 수가 하락 반전된 이후 입을 닫았다.
최근 들어 정부의 ‘좋은 지표 홍보’ 노력은 날로 수위를 더해가고 있다. 통계청은 이달부터 산업활동동향과 고용동향 등 주요 월별 통계를 소개하는 담당 공무원을 과장에서 국장으로 바꿨다. 통계청은 “통계 해석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 기관의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가에서는 “경제는 좋은데 홍보가 부족하다는 청와대 의중에 따라 전보다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으려는 포석”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지난 15일 열린 고용동향 브리핑에서는 담당 통계청 국장이 ‘초단기 알바’가 급증한 이유에 대해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근로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사실 개인적인 추정이었다”고 번복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를 홍보하는 데 골몰하는 사이 국민의 통계 불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입맛에 맞는 사실만 골라 보는 행태가 개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건 더욱 우려되는 대목이다. 각종 통계자료가 발표되고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포털사이트에는 ‘통계 조작’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는다.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무조건 부정하고 비난부터 하고 보는 식이다. 통계 신뢰가 무너지면 국정에 대한 신뢰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