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서 ‘생태계(ecosystem) 경쟁력’은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내놓으며 주목받은 개념이다. 이전까지 휴대폰 1등이었던 노키아가 품질과 기술에만 매몰돼 ‘세계 최고’ ‘세계 최초’에 매달리는 사이, 아이폰은 앱스토어를 열어 누구나 상품을 내놓고 수익을 올리며 광고를 하고 서비스를 사고파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종업원 주주는 물론 고객 파트너 지방자치단체 정부까지 참여하는 ‘이해당사자 생태계’를 창출한 것이다. 아이폰이 여전히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 생태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다.
아이폰 출시 이후 10여 년이 넘은 지금 새로운 생태계가 꿈틀거리고 있다. 바로 사이버 생태계다. 거칠게 말하면 기계까지 참여하는 가상의 생태계다. 아주 잘나가는 증권사를 예로 들어 보자. 이런 회사라면 새벽에 고객이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세계 증시 리포트를 제공해야 한다. 새벽을 설친 애널리스트가 이 작업을 해왔다.
이해당사자 넘는 사이버 세상
이제 이 리포트를 쓰는 주인공은 바로 인공지능(AI)이다. 24시간 내내 모든 나라의 시장 리포트를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다. 그런 AI들이 증권사 사이트에서 ‘활동’하며 고객, 투자자, 각국 증권거래소, 규제당국과 ‘소통’하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를 대신해 AI가 투자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주식매매 알고리즘을 학습한 AI라면 국경을 넘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전문 주식투자자가 될 수 있다.
AI캐릭터 참여로 역동적 거래
이전에도 자동화 거래는 가능했다. 그러나 그 정보는 사람이 입력했다. ‘직접적 통제’가 대전제였다. 주식 메커니즘을 마스터하고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AI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람을 넘어서는 무한 에너지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스스로’ 탁월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AI는 이제 곳곳에서 주역으로 등장한다. 보안업계의 24시간 보초는 딥러닝으로 AI 역량을 갖춘 폐쇄회로TV(CCTV)가 맡는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는 취업면접AI, 대출 신청자의 신용평가를 리뷰하고 대출 한도를 결정하는 대출심사AI가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분위기와 상황에 맞춰 어울리는 노래를 바로 만들어주는 작곡AI가 나온다. 이런 각종 AI를 사람에 빗대 ‘AI 캐릭터’라고 한다면 이 AI 캐릭터들은 해당 업계가 만들어가는 생태계에서 버젓한 일원이 될 수 있다.
엊그제 열린 성공경제포럼에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제시한 ‘문화 우주(culture universe)’는 K팝과 한류를 키워드로 한 문화 생태계다. 이 회장은 국민이 각자 좋아하는 ‘스타 아바타’를 10개씩 갖게 되면 우리의 인구는 5억 명이 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타를 꼭 빼닮은 AI 로봇과 같이 사는 것을 쉽게 예로 들 수 있지만, 그보다는 AI 아바타들이 사이버 세상에서 활동하도록 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가 다른 스타들과 함께 공연하는 이벤트를 내가 직접 기획할 수 있다. 한밤에는 지구 반대편의 팬들이 그 공연을 관람한다. 브랜드, 저작권, 관련 상품 거래도 일어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태계다. 실제 세상 못지않은 경제적 부가 창출되는 새로운 ‘우주’일 수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AI 캐릭터 혹은 AI 아바타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언어적 장벽이 있고 시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 비해 이런 AI 캐릭터는 훨씬 자유롭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생태계가 열리고 있다. 귀사도 준비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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