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환대, 그 아름다운 명령

입력 2020-01-15 18:16
수정 2020-01-16 00:16
2005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부사령관 제거 작전에 미국의 네이비실이 투입된다. 요원들은 잠복 중 마주친 양치기들을 논쟁 끝에 살려 보내는데, 이들은 곧장 탈레반 본부로 달려갔다. 작전은 실패하고, 파슈툰족의 목숨을 건 도움으로 혼자 살아남은 마커스 러트럴은 지옥의 기억을 기록했다. 2013년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외로운 생존자(lone survivor)는 참혹한 전투의 한복판에서 찢긴 도덕과 윤리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의 직무 대부분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중견기업을 향한 많은 제안, 건의, 요청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설익은 내용도 있지만 일관성 있는 태도를 취하려고 애쓴다. 자료가 어설퍼도 꼼꼼히 살펴 질문하고, 진지하게 듣는다. 협력 관계로 연결되지 않을 때는 까닭을 설명하고 훗날을 기약한다. 동료들에게도 모든 손님을 친절하게 맞으라고 부탁한다. 사람만이 타인에게 공감하고 선의를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는 피할 수 없는 궁극적 한계인 죽음의 무차별성을 지적했다.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됐다. 나약한 이미지로 떠오른 ‘타자’의 얼굴을 마주할 때 책임과 사랑의 윤리적 당위가 생겨난다고 그는 설명했다. 타인을 환대하는 일이야말로 폭력으로 점철된 인류 문명의 절멸을 막아낸 최후의 방어선이 아닐까.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아름다운 명령이다.

세계 13위의 국가경쟁력과 10위권의 경제력 아래 청년들은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노인들은 힘겹게 늙어간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둘러싼 증오의 말과 몸부림이 날뛰고, 해법을 찾는 절박한 시도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길을 잃었다.

희망의 싹은 마음의 온기를 회복하는 작은 몸짓에서 피어날 것이다. 일체의 목적의식을 버리고 모든 타인을 기꺼이 맞이하면 장벽은 허물어진다. 가족, 친구와 이웃, 수많은 타인에게로 환대의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배려와 위로는 잔잔하게 퍼져나가 마침내 모든 마음을 적신다.

러트럴 중사를 살린 건 손님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 ‘파슈툰왈리’다. 처음 만난 외국인을 살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생명을 바쳤다. 성경은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을 전한다. 불교에서는 허상을 차별하는 일체의 분별심을 내려놓아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타인, 어떻게 대할 것인가.